Gangnam Republic — AURANIM Original Series
EPISODE 002
믿음
Faith
평범한 직장인에게 강남에 산다는 건 생각보다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좋은 집.
좋은 학교.
좋은 병원.
좋은 환경이라 믿는 것들…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 좋은 것들을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은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나는 매일 아침 강남을 떠났다.
그리고 매일 밤 강남으로 돌아왔다.
강남에 살기 위해 강남 밖에서 돈을 버는 삶.
그게 내 일상이었다.
광화문까지는 40분
비가 오거나 사고라도 나면 1 시간이 넘었다.
운전대를 잡고 한강을 건널 때마다 멀어지는 강남을 백미러로 한 번씩 봤다.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회의가 시작됐다.
“김 과장.”
팀장이 모니터를 가리켰다.
“이번 분기 실적입니다.”
빨간 숫자가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본사에서 계속 압박이 옵니다.”
“알겠습니다.”
“이번 고객은 꼭 잡아야 합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회의는 늘 비슷했다.
매출.
이익.
비용.
성과.
사람보다 숫자가 먼저였다.
점심시간.
회사 식당.
후배 민석이 내 맞은편에 앉았다.
“과장님.”
“응.”
“혹시 이직 생각해 보신 적 있으세요?”
“갑자기?”
“요즘 헤드헌터 연락 많이 와서요.”
나는 웃었다.
“연봉은?”
“지금보다 조금 높아요.”
“출근은?”
“마곡.”
나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안 갈 거야.”
“왜요?”
“멀잖아.”
민석이 웃었다.
“과장님 지금도 한 시간 출근하시잖아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마곡이 멀어서가 아니었다.
강남에서 더 이상 멀어지기 싫었다.
민석은 그걸 몰랐다.
오후 다섯 시.
수진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
“응.”
“오늘 학원 상담 다녀왔어.”
“그래?”
“영어반 하나 올리래.”
“…”
“안 올리면 따라가기 힘들대.”
나는 창밖을 바라봤다.
광화문의 빌딩들이 노을에 물들고 있었다.
“비용은?”
“월 사십.”
또 침묵.
“할까?”
나는 대답 대신 한숨을 내쉬었다.
“지우가 원해?”
“아니.”
“그럼?”
“다른 애들은 다 한대.”
그 말 한마디가 모든 설명이었다.
퇴근길.
라디오에서는 경제 뉴스가 흘러나왔다.
“정부는 내일 국가행정 AI 시스템의 운영 계획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나는 채널을 돌렸다.
요즘은 AI 이야기뿐이었다.
회사도 AI.
뉴스도 AI.
주식도 AI.
세상은 AI가 바꾼다고 떠들었지만,
내 현실을 바꾸는 건 금리였다.
학원비였다.
성과급이었다.
집에 도착하니 지우는 숙제를 하고 있었다.
“아빠.”
“응?”
“우리 집 얼마야?”
나는 웃었다.
“갑자기 그건 왜?”
“민준이가 우리 집 엄청 비싸대.”
“그렇구나.”
“그럼 우리 부자야?”
나는 지우를 바라봤다.
잠시 망설이다가 웃으며 말했다.
“아니.”
“그럼?”
“열심히 사는 거야.”
지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뭐야?”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나도 잘 몰랐다.
열심히 살면 행복해지는 줄 알았다.
그런데 요즘은
열심히 살아도 제자리인 것 같았다.
밤.
수진은 잠들었고,
지우 방에서는 작은 숨소리가 들렸다.
나는 혼자 베란다에 나왔다.
강남 아파트 불빛이 눈앞에 펼쳐졌다.
저 수많은 집에도
나 같은 사람이 살고 있을 것이다.
대출을 갚고,
아이를 학원에 보내고,
회사에서 버티며,
내일도 출근할 사람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정말 이 집의 주인일까.
아니면,
은행과 회사가 잠시 맡겨둔 삶을 살아가는 걸까.
휴대폰이 진동했다.
정부 알림이었다.
국가행정 AI 브리핑.
내일 오전 9시.
나는 화면을 잠시 바라보다가 휴대폰을 껐다.
‘또 새로운 정책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