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ngnam Republic — AURANIM Original Series
EPISODE 011
주치의
The Primary Physician
새벽 5시 40분.
대치동.
김도윤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식탁 위.
휴대폰 화면이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났다.
강남공화국 행정 AI 연동으로 인해 다음 진료부터 시민번호 확인 절차가 적용됩니다.
도윤은 그 문장을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창동.
혼자 사는 어머니.
다음 달.
강남S병원 예약.
그 병원은.
도윤에게 병원이 아니었다.
아버지를 잃은 곳과.
어머니를 되찾은 곳.
그 두 기억이 만나는 곳이었다.
열세 해 전.
겨울.
새벽 4시.
전화벨이 울렸다.
“도윤아.”
“아버지가 사고 나셨다.”
도윤은 외투도 제대로 걸치지 못한 채 집을 뛰쳐나갔다.
창동 병원.
응급실.
아버지는 산소호흡기를 쓰고 있었다.
평생 환경미화원으로 일한 사람.
자동차도 없었다.
휴대폰도 없었다.
새벽마다 자전거를 타고 출근했다.
창동에 작은 집 한 채 마련하는 것.
그것이 평생의 꿈이었다.
그날도.
평소처럼 출근했다.
빙판길.
미끄러진 자전거.
머리를 세게 부딪쳤다.
그게 전부였다.
의사가 말했다.
“뇌출혈입니다.”
“응급수술을 해야 합니다.”
도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수술은 시작되지 않았다.
“집도할 신경외과 전문의가 다른 응급수술 중입니다.”
“조금만 기다려야 합니다.”
30분.
한 시간.
두 시간.
모니터의 심장박동은 점점 느려졌다.
아버지가.
천천히 눈을 떴다.
산소호흡기 너머.
도윤을 바라봤다.
입술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엄마.”
그 한마디였다.
심전도 소리가 길게 이어졌다.
도윤은.
그날 처음 알았다.
같은 대한민국이어도.
병원의 시간은 같지 않다는 것을.
1년 뒤.
이번에는 어머니가 쓰러졌다.
119 구급차는.
가장 가까운 창동 병원으로 향했다.
응급실.
MRI를 보던 의사가 말했다.
“뇌종양으로 보입니다.”
“빨리 수술해야 합니다.”
어머니는 담담하게 웃었다.
“집 가까운 데가 최고지.”
“여기서 하자.”
도윤은 아무 말 없이 MRI 영상을 바라봤다.
그리고.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누워 있던 병실이 떠올랐다.
“…안 됩니다.”
의사가 표정을 굳혔다.
“시간 없습니다.”
도윤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전원하겠습니다.”
도윤은 모든 진료기록을 챙겼다.
MRI.
CT.
혈액검사.
의무기록.
두 손으로 봉투를 움켜쥔 채.
강남S병원을 찾아갔다.
“예약이 없습니다.”
“진료가 어렵습니다.”
거절.
다음 날.
또 거절.
그다음 날.
다시 거절.
도윤은 포기하지 않았다.
접수 직원에게 말했다.
“응급실 바닥에서 하루를 보내도 괜찮습니다.”
“교수님 얼굴만 한 번 보게 해주십시오.”
결국.
어머니를 모시고 응급실로 들어갔다.
여섯 시간.
열두 시간.
스무 시간.
스물네 시간.
다음 날 새벽.
어머니 이름이 불렸다.
사흘 뒤.
주치의.
윤태성 교수가 도윤을 불렀다.
MRI.
CT.
PET.
조직검사.
교수는 한참 동안 영상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뇌종양이 아닙니다.”
도윤의 심장이 내려앉았다.
“폐암입니다.”
잠시.
“…그리고.”
“뇌까지 전이됐습니다.”
도윤은 말을 잃었다.
창동 병원은.
암을.
뇌종양으로 오진했다.
만약.
그대로 수술했다면.
암은 치료도 시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항암치료가 시작됐다.
긴 싸움이었다.
머리카락이 빠졌다.
구토가 계속됐다.
체중이 줄었다.
어머니는 여러 번 말했다.
“그만하자.”
도윤은 매번 말했다.
“조금만 더.”
창동에서 강남까지.
버스.
지하철.
다시 버스.
왕복 네 시간.
그 길을.
5년 동안 반복했다.
그리고.
다섯 번째 겨울.
윤태성 교수가 웃으며 말했다.
“축하드립니다.”
“완치입니다.”
어머니는 울었다.
도윤도.
아버지를 떠나보낸 뒤.
처음으로 울었다.
현재.
휴대폰이 울렸다.
“도윤아.”
어머니였다.
“병원에서 문자가 왔는데.”
“…시민번호를 확인한대.”
도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안 되면.”
“…창동 병원 다니면 되지.”
순간.
도윤의 표정이 굳었다.
“…안 됩니다.”
긴 침묵.
“…절대 안 됩니다.”
도윤은 천천히 말했다.
“어머니.”
“거긴 안 됩니다.”
“제가.”
“…제가 어떻게든 하겠습니다.”
어머니는 한참 말이 없었다.
그러다 작게 웃었다.
“…미안하다.”
도윤은 끝내.
대답하지 못했다.
전화를 끊었다.
휴대폰 화면.
김도윤.
강남 시민.
배우자 등록 완료.
자녀 등록 완료.
부모.
미등록.
도윤은 오래 바라봤다.
내 자리는 있다.
수진의 자리도 있다.
지우의 자리도 있다.
하지만.
어머니 자리는 없다.
밤 11시.
도윤은 컴퓨터를 켰다.
검색창.
강남 시민 추가 등록.
검색.
현재 등록 가능 시민.
0명.
그 아래.
작은 문장.
결원 발생 시 대기 등록이 가능합니다.
도윤은 화면을 바라봤다.
누군가 나가야.
누군가 들어올 수 있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처음으로.
희망보다.
죄책감이 먼저 들었다.
컴퓨터를 껐다.
하지만.
그날 밤.
김도윤은 처음으로 알았다.
강남공화국은.
누군가를 선택하는 시스템이 아니었다.
누군가를 밀어내야만.
다른 누군가를 받아들이는 시스템이었다.
그리고.
어머니를 지키기 위해.
언젠가.
자신도 그 게임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