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받았다 — 프롤로그. 그 문서는 내 것이 아니었다

그냥 받았다 — AURANIM Original Series

PROLOGUE

그 문서는 내 것이 아니었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회사명은 모두 가명이며, 일부 배경은 각색되었습니다.

법정은 조용했다.

사람은 많았는데 소리가 없었다.

자리는 거의 다 찼고, 가끔 종이 넘기는 소리만 들렸다.

나는 피고석에 앉아 있었다.

왼쪽에는 내 변호사가 앉아 서류를 보고 있었다.

말은 없었다.

앞줄에 서진우가 앉아 있었다.

몸을 약간 앞으로 숙인 채 손을 깍지 끼고 있었다.

표정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이상하게 편안해 보였다.

그 옆에는 고개를 숙인 사람이 있었다.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한 칸 떨어진 자리에는 의자에 깊게 기대앉은 사람이 굳은 얼굴로 정면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정진동.

그는 턱을 약간 든 채 앞을 보고 있었다.

옆자리 변호사의 배지가 눈에 띄었다.

대형 로펌이었다.

반대편 알카켐 쪽에는 사람이 많았다.

변호사만 여러 명이었다.

서류는 반듯하게 정리돼 있었고, 사람들 표정도 정리돼 있었다.

흐트러짐이 없었다.

판사가 들어오자 모두 일어났다가 앉았다.

검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준비된 사람의 움직임이었다.

“피고인.”

정확하게 나를 봤다.

“이직 과정에서 전 직장의 자료를 활용한 사실이 있습니까.”

나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숨을 한 번 골랐다.

“… 없습니다.”

내 목소리가 낯설었다.

검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서류 한 장을 꺼냈다.

탁.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전 직장 고객사 물량 단가 정보입니다.”

나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는 문서였다.

서진우가 보낸 메일이었다.

본문은 없었다.

첨부파일만 하나 있었다.

단가, 물량, 고객사 이름.

숫자뿐이었다.

나는 그걸 만들지 않았다.

요청한 적도 없었다.

그냥 받았다.

열어봤고, 읽었고, 저장했다.

그게 전부였다.

그런데 지금

그 문서가 내 앞에 놓여 있었다.

“피고인은 이 자료를 본 적 없습니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만든 자료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 자료가 어디서 시작됐는지는 알고 있었다.

천천히 시선을 들었다.

서진우가 나를 보고 있었다.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나는 다시 정면을 봤다.

“… 모릅니다.”

말이 떨어지는 순간, 정진동이 옆 사람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입꼬리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

나는 그걸 봤다.

그리고 못 본 척했다.

문제가 된 건 거짓이 아니었다.

그 거짓이 필요했던 구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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