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받았다 — AURANIM Original Series
CHAPTER 01
착각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회사명은 모두 가명이며, 일부 배경은 각색되었습니다.
<이 글에 등장하는 인물과 회사명은 모두 가명입니다.>
“나는 내가 잘해서 합격한 줄 알았다.”
알카켐 면접은 두 번째 직장 면접이었다.
첫 번째 직장은 렉스였다. 독일계 화학물질 전문 포워딩 회사였다. 거기서 화학물질 물류를 처음 배웠다. 위험물 취급 방법. 규제. 고객사 관리. 그 분야가 나한테 맞았다.
상사는 김이사였다. 검은 피부에 큰 눈, 안경. 나이보다 훨씬 들어 보였다. 비즈니스 캐주얼 차림에 항상 술 담배 냄새가 살짝 배어 있었다. 잘되면 본인 덕. 안 되면 아랫사람 탓. 근데 렉스한테는 충성이었다.
그리고 혼자 자유 출퇴근을 했다.
처음엔 그게 싫었다. 본인 편의만 챙기는 사람이었다. 불편하면 아랫사람 탓이었다.
근데 솔직히 부러웠다.
직장인이 저렇게 다닐 수도 있구나. 그 생각이 머릿속에 박혔다. 저 사람처럼 살고 싶지는 않았다. 근데 저 사람이 누리는 자유는 갖고 싶었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 내 생활. 내 시간. 직장이 나를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걸 일찍 알았다. 날 갈아넣으면서 다니고 싶지 않았다. 그게 내가 원하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렉스에서는 성장하기 어렵다는 것도 알았다. 렉스코리아 업무팀은 대부분 여직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물류에서 업무는 여직원들이 맡는 게 관례처럼 보였다. 그 안에 내가 있었다. 거기서 더 성장하기는 어렵겠다고 판단했다. 김이사한테 영업 하겠다고 했다.
김이사가 말했다.
“그럼 업무랑 영업 둘 다 해.”
영업팀 공석이었는데. 그렇게 말했다.
그때 이직을 결심했다. 얼마 후 김이사가 조용히 말했다.
“알카켐이라는 글로벌 기업에서 나한테 연락이 왔어. 근데 나는 렉스 있을 거야. 자네 이직할 생각 있으면 한번 가봐.”
나중에 알았다. 김이사는 그 자리를 렉스와 연봉 협상 카드로 쓰고 있었다. 케일이라는 미국인과 면접도 봤다고 했다. 근데 갈 생각은 없었다. 렉스에서 처우 개선 받을 때까지 버티는 거였다. 내가 나갈 생각이라는 걸 눈치채고 넘겨준 것 같았다.
나는 어차피 이직을 생각하고 있었다. 국내 물류 대기업은 이미 합격한 상태였다. 알카켐은 가볍게 보러 가는 자리였다.
그날 정장을 입었다. 면접이었으니까.
근데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달랐다.
강남 특급 호텔. 미국 팀이 묵고 있던 숙소였다. 네 사람이 앉아 있었다. 한국 지사장 최식은, 미국인 앤디와 케일, 그리고 서진우.
최식은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키가 컸다. 마른 체형에 182는 돼 보였다. 좁은 얼굴에 앞머리를 위로 올려 좁은 이마를 더 드러내고 있었다. 안경을 쓰고 있었다. 입이 약간 튀어나와 있었다. 면바지에 셔츠 차림이었다. 이마에 주름이 깊었다.
미국인 앤디와 케일은 정장이었다.
그리고 서진우.
혼자 달랐다. 가죽 자켓에 청바지였다. 172 정도 됐다. 통통한 몸매에 까무잡잡한 피부. 좁은 이마에 숱 많은 머리를 2대8로 가르고 있었다. 흰머리가 군데군데 섞여 있었다. 오똑한 코에 얇은 입술. 눈썹이 옅었는데 그게 오히려 매서운 눈을 더 도드라지게 했다. 셔츠는 바지 속으로 집어넣고 있었다. 방 안에서 가장 편안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면접은 영어로 진행됐다. 앤디와 케일이 주로 질문했다. 경력, 실적, 업무 방식. 나는 렉스에서 했던 화학물질 물류 경험을 설명했다.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서진우는 중간에 가벼운 것들만 물었다.
“취미가 뭐예요?”
“골프 배우고 있습니다. 주변에서 영업하려면 배워야 한다고 해서요.”
서진우가 픽 웃었다.
“오, 나도 골프 좋아하는데. 잘 배워놔요. 나중에 같이 치게.”
“가족은요?”
“와이프랑 아이 있습니다. 막 태어났어요.”
서진우가 처음으로 표정이 바뀌었다. 입꼬리가 올라갔다.
“축하해요. 잘 자라겠네.”
그렇게 말하고 다시 조용해졌다. 그게 전부였다. 앤디와 케일이 실적과 경력을 물을 때 서진우는 그냥 듣고 있었다. 가끔 고개를 끄덕였다. 장난기 같은 게 있었다.
나는 스물아홉이었다. 177에 82키로. 넓은 이마에 두꺼운 입술.
면접이 끝나고 나왔다. 국내 물류 대기업이 더 안정적이었다. 연봉도 높았다. 갓 태어난 아이가 있었다.
근데 알카켐이 걸렸다.
센터가 경기 남부에 있었다. 서울 사는 나한테 출퇴근이 부담이었다. 근데 일주일에 한두 번 출근에 자유 출퇴근이 가능했다. 주유비, 톨비도 지원해줬다. 차가 있어야 했지만 감당할 수 있었다. 영어로 일하는 환경. 미국 출장. 글로벌 기업의 한국 세팅 멤버.
그리고 무엇보다.
내 시간을 지킬 수 있을 것 같았다.
김이사의 자유 출퇴근이 떠올랐다. 저 사람처럼 살고 싶지는 않았다. 근데 저 사람이 누리던 그 자유. 그게 여기서는 가능할 것 같았다.
며칠을 고민했다.
대기업을 포기했다. 알카켐을 선택했다.
나중에 들었다. 미국 팀은 나를 안 뽑으려 했다고. 어리고 경험이 부족하다고. 서진우가 밀어붙였다고 했다. 내 자신감과 느낌이 좋았다고. 그 한마디로 결정이 뒤집혔다고 했다.
나는 내가 잘해서 된 줄 알았다.
2.
알카켐 한국 센터는 경기 남부에 있었다.
반도체 중심도시였다. 총 부지 1만 평. 5개 동. 12단 하이랙. 국내 최초 삼방향 지게차. 방폭시설. 항온항습 시스템. 초평탄 클린룸. 내진 설계. 총 투자 규모 천억.
처음 봤을 때 숨이 막혔다.
내가 현장에 들어와있는 기분이었다. 12미터 하이랙은 사진으로 봤을 때와 달랐다. 서 있으면 천장이 안 보였다. 삼방향 지게차가 좁은 통로를 막힘 없이 움직였다. 모든 로케이션이 서버와 연결돼 중앙관제 센터에서 실시간으로 관리됐다. 어느 칸에 무엇이 있는지, 온도는 몇 도인지, 이상 징후가 있는지. 전부 데이터로 잡혔다.
국내에 이런 시설이 있었구나.
그리고 내 전용 룸이 있었다.
작은 공간이었다. 근데 내 이름이 붙어 있었다. 영업팀 전용. 천억짜리 시설보다 그게 더 좋았다. 내 자리. 내 공간. 출근이 자유로운 대신 왔을 때만큼은 내 것이었다.
서진우는 그 시스템을 한국 법규에 맞게 세팅하고 조율하는 사람이었다. 글로벌 기업의 기준과 한국 규제 사이의 간격을 메우는 게 서진우 일이었다. 나는 그걸 고객사한테 설명하는 사람이었다.
센터 위치는 국내 최대 규모 반도체 회사와 인접한 거리에 있었다. 이유가 있었다. 반도체 공정에는 수십 가지 특수화물이 필요했다. 포토레지스트, 식각가스, 전구체, 고순도 세정액. 회로를 새기고 깎고 닦는 모든 과정에 화학물질이 들어갔다. 대부분 일본과 미국 기업에서 납품됐다. 문제는 보관이었다. 반도체 회사들은 공장 내부에 이런 물질들을 두지 않으려 했다. 위험성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적절한 외부 센터가 국내에 없었다. 수요는 있었다. 공급이 없었다.
알카켐 센터가 그 자리를 채울 수 있었다.
3.
입사하고 6개월 동안 제대로 된 실적이 없었다.
렉스에서 업무팀으로 일했다. 서류, 절차, 고객 대응, 실무. 그걸 익혔다. 면접 때 자신 있게 말했다. 그걸 바탕으로 영업을 할 수 있다고. 근데 막상 영업을 시작하니 달랐다. 사무실에서 주어진 일을 하는 것과 내가 일을 만들어야 하는 건 완전히 달랐다.
알카켐은 두 파트로 나뉘어 있었다. 오퍼레이션은 서진우. 영업은 미국 본사 담당. 나는 조직도 상 글로벌 영업팀 소속이었다. 매주 미국 포함 글로벌 팀들과 영어로 회의를 했다. SF 시스템으로 영업 실적과 활동을 관리했다. 주기적으로 시스템 교육도 받았다.
근데 실적이 없었다.
최식은은 서진우 서포트로 유치한 고객사를 본인이 영업한 것처럼 본사에 보고하고 있었다. 나는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회사에서는 무언의 압박이 들어오는 것 같았다. 자유로운 출퇴근 때문에 왔는데 눈치가 보였다. 자유롭지 않았다.
뭔가 해야 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블로그를 만들었다. 알카켐 홈페이지는 영문 위주였다. 한국 센터 국문 홍보 페이지가 필요했다. 직접 만들었다. 허접했다. 근데 최선이었다. 내 실력에서.
일단 올렸다.
검색창에 나오려면 홍보가 필요했다. 서진우한테 영업비 지원을 요청했다. 받았다. 홍보를 했다. 스팟 문의가 들어왔다. 작은 건들이었다. 큰 건들은 발로 뛰어야 한다는 걸 알았다.
미국 본사 고객 리스트를 확인했다. 콜드콜을 돌렸다. 그렇게 제론재팬과 연결됐다.
한국 영업사무소 번호를 찾았다. 전화를 걸었다. 담당자를 바꿔달라고 했다. 처음엔 연결이 안 됐다. 두 번째도. 세 번째에 담당자 목소리를 들었다. 짧게 말했다. 우리 센터를 소개하고 싶다고. 한 번만 만나달라고.
일본 기업은 느렸다. 개인이 결정하지 않았다. 조직이 결정했다. 담당자가 좋다고 해도 위에서 검토하고, 그 위에서 또 검토했다. 미팅 한 번 잡는 데 한 달이 걸렸다. 센터 방문 미팅을 잡는 데 또 한 달이 걸렸다.
그들이 센터를 처음 봤을 때 표정이 달라졌다. 말은 아꼈지만 눈빛이 달랐다. 관심이 있었다. 근데 한국에서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이 제한적이라고 했다. 시간이 걸릴 거라고 했다.
나는 기다렸다. 6개월 동안 꾸준히 연락했다. 컨퍼런스 미팅을 여러 차례 했다. 일본 본사 담당자들과 화상으로. 자료를 보냈고, 질문에 답했고, 추가 자료를 또 만들었다. 미국 본사에 요청해서 비슷한 비즈니스 레퍼런스를 받았다. 공격적인 견적을 냈다. 그리고 기다렸다.
일본 계약 담당자가 직접 방문하겠다고 연락이 왔다.
센터를 둘러보고, 미팅을 하고, 그들은 견적 요청서를 보냈다. 그게 계약의 시작이었다.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그들이 취급하는 물질 중 국내 미등록 품목이 있었다. 등록 없이는 센터에 입고할 수 없었다. 나는 서진우한테 전달했다.
“사장님, 이거 미등록 물질이 있어서 입고가 안 될 것 같은데요.”
서진우가 파일을 훑어봤다. 잠깐이었다.
“야, 걱정 마. 우리 은과장 해놓은 거 있잖아. 내가 물질등록 할게.”
아무 말 없이 직접 물질등록 법적 절차를 밟았다.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었다. 근데 서진우가 직접 했다.
본사에서 제동이 걸렸다. 신규 물질 등록은 위험성이 있으니 견적을 올려야 한다고 했다. 계약이 흔들릴 수 있었다.
서진우가 본사 컨퍼런스 콜에서 말했다.
“내가 직접 관리한다. 등록 절차도 내가 했다. 문제없다.”
목소리가 낮고 단호했다. 어눌한 영어였지만 흔들림이 없었다. 본사는 물러섰다. 계약이 됐다.
안도했다. 기쁘다기보다는 살았다는 느낌이었다. 6개월이었다. 그 시간 동안 쌓인 무언의 압박이 그제야 조금 내려갔다.
그날 서진우가 나를 봤다. 매서운 눈에 장난기가 섞인 표정이었다.
“우리 은과장, 잘 했어. 이제 진짜 시작이야.”
그리고 골프장을 잡았다. 고객사 유치될 때마다 그랬다. 같이 나가서 놀자고 했다. 잘 되면 놀러 다녀야 한다고 했다. 일이 끝나면 사람이 남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내가 잘해서 그런 줄 알았다.
4.
서진우와는 자주 이야기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원온원이었나 싶다. 회의실에서 격식 차린 미팅이 아니었다. 그냥 차 한잔하면서 비즈니스 이야기를 나눴다. 서진우는 내 영업 활동을 일방적으로 묻지 않았다. 본인 네트워크를 통해 들은 정보를 먼저 꺼냈다. 그걸 내가 어떻게 영업에 활용할지 같이 생각했다.
그 시간이 좋았다.
모먼이라는 고객사를 영업하고 있었다. 특수화물 고객사들은 특수물질도 보유하지만 일반품 비중이 높을 때가 있다. 모먼이 그랬다. 월 1000톤. 이런 경우 일반품과 특수물질 견적가를 수익성과 고객 경쟁력 둘 다 잡을 수 있는 수준으로 맞춰야 했다.
문제가 있었다. 우리는 팔레트 단위로 보관 입출고를 했다. 모먼은 kg 단위로 맞춰달라고 했다. 회사 시스템은 kg 단위로 맞추기 어려운 구조였다.
서진우한테 말했다.
“사장님, 모먼이 kg 단위 요청하는데 시스템이 안 맞아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서진우가 잠깐 생각했다.
“모먼 공장 한번 가보자. 실제 입출고 단위 확인해봐야 알겠다.”
같이 공장을 방문했다. 대부분 낱개 박스 입출고였다. 근데 보관은 팔레트 상태였다. SKU만 3만개가 넘었다. 로트 관리, 유효기간 관리도 필요했다.
사무실로 돌아와서 서진우와 마주 앉았다.
“이거 어떻게 풀어요?”
서진우가 말했다.
“월 Revenue 3억, Profit 9천만원 수준으로 세팅해보자. 마진율 30%. 인력 투입을 어떻게 하느냐가 관건이야. 인력 운용에 따라 수익 여부가 결정돼.”
센터 기본 설계는 반도체 공장 납품 고객사에 맞춰져 있었다. 소품종 대량 생산. 모먼은 정반대였다. 다품종 소량. SKU 3만개.
내가 물었다.
“사장님, 이거 우리 시스템으로 가능한 건가요?”
서진우가 나를 봤다. 잠깐이었다.
“우리 일이 안 되는 건 없어. 안 하는 거지.”
그 말이 머릿속에 남았다. 안 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 그 차이가 이 사람을 설명하는 것 같았다.
미국 본사 IT팀에 시스템 개선을 요청했다. 어렵다고 했다. 설득이 안 됐다.
서진우가 다른 방법을 찾았다. 알카켐 조인 전 포커스 센터에서 사용했던 로컬 시스템을 알카켐 시스템과 연동하는 방법이었다. 가능했다. 다만 현장 사무실 직원이 매뉴얼 작업을 해야 했다. 인력 비용이 견적에 들어갔다. 견적이 높아졌다.
고객사를 설득할 무언가가 필요했다.
서진우가 말했다.
“자체 장외영향평가 할 수 있으니까 그 비용 빼줄 수 있어. 그리고 운송사 설립하자.”
운송사가 있으면 고객사 제품 납품 운송까지 토탈 서비스 제안이 가능했다. 보관, 취급, 운송. 한 번에. 고객사 입장에서는 우리한테 오더 하나만 하면 끝나는 구조였다.
운송사 설립을 위해 서진우는 본사와 미팅에 들어갔다.
국내 반도체 공장에 차량이 들어가려면 요건이 있었다. 차량 사전 등록 및 심사. 운전기사 보안교육 이수. 차량 내부 청결 기준 충족. 특수화물 취급 교육 이수. 출입증 발급. 공장마다 별도 등록에 정기 재심사까지. 까다로웠다. 근데 서진우는 이미 알고 있었다.
“운송사 설립은 차량 소유 안 해도 돼. 지입 차량 이용하면 되니까.”
특수물질 영업 운송 차량에는 등록 번호판이 필수였다. 번호판 하나에 2천만원이 넘는 시장이었다. 서진우는 이전에 번호판 100개를 사두었다고 했다. 그 번호판을 알카켐에 팔고 운송사 지분을 받는 딜을 했다. 차량은 1톤 3대, 5톤 2대, 18톤 3대. 10대만 구매했다. 번호판 100개가 다 필요한 게 아니었다. 서진우는 그 번호판들로 알카켐 안에 자리를 만들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잠깐 멈췄다.
번호판 100개. 이 사람이 얼마나 앞을 보고 움직이는 사람인지 그때 처음 실감했다.
자체 운송사가 생기니 모먼한테 새로운 제안이 가능해졌다. 보관 견적을 낮추고 운송 서비스를 추가했다. 낮춘 부분을 운송에서 커버하는 구조였다. 고객사 입장에서는 전체 비용이 경쟁력 있게 정리됐다. 모먼이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계약이 됐다.
그날 퇴근하면서 서진우가 말했다.
“우리 은과장, 얼굴로 영업하더니 이제 머리도 쓰네.”
픽 웃었다. 나도 웃었다.
그때는 그게 칭찬인 줄만 알았다.
5.
어느 날 센터에서 소리가 났다.
지게차였다. 최식은이 직접 몰고 있었다. 지사장이 왜 지게차를 모는지 아무도 묻지 않았다. 조작을 잘못했다. 특수화물이 떨어졌다. 현장이 멈췄다.
서진우가 달려왔다. 청바지에 셔츠 차림이었다. 셔츠가 바지 밖으로 나와 있었다. 뛰면서 다시 집어넣고 있었다. 아무 말 없이 상황을 정리했다. 최식은은 옆에 서 있었다. 182 큰 키가 그 순간만큼은 작아 보였다. 엥엥대는 목소리로 뭔가 말하려다가 멈췄다.
나는 그 장면을 봤다.
지사장이 지게차를 몰면 안 된다.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직접 하려 했던 거였다. 근데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서진우도. 나도.
고객사에서 특수화물 취급 문의가 오면 최식은은 항상 서진우한테 먼저 물었다.
“서 대표님, 이거 취급 가능한 건가요?”
서진우가 서류를 보면서 짧게 답했다.
“가능해요. 근데 장외영향평가 먼저 해야 해요.”
최식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서 대표님은 달라요. 이런 건 서 대표님밖에 모르시죠.”
서진우가 픽 웃었다.
“에이, 무슨 말씀을. 지사장님이 계셔야 제가 일하죠.”
말은 그렇게 했다. 눈빛은 달랐다.
미국 본사도 마찬가지였다. 최식은이 보고하면 본사는 말했다.
“서진우랑 다시 확인하고 연락할게요.”
최식은을 거치지 않고.
그날 이후 최식은은 더 조용해졌다. 현장에 나오지 않았다. 대신 보고서가 늘었다. 미국 본사로 가는 보고서. 서진우 실적과 내 영업 성과가 담긴 보고서.
본인 이름으로.
6.
운송사 대표는 최식은이었다.
미국 본사가 결정했다. 서진우가 아니라 최식은. 서진우가 만든 구조에 최식은 이름을 얹었다.
서진우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후 케일이 말했다. 센터 대표를 본인이 맡겠다고. 중국에서 한국으로 오겠다고.
케일은 게이츠 회장 처남이었다. 글로벌 CEO 홀트의 동생. 보스턴 컨설팅에서 근무했다. 한국어는 못했다. 중국에서 오래 지냈다. 한국 현장은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나는 처음에 케일이 좋은 사람인 줄 알았다.
GGP라는 고객사를 영업하고 있었다. 센터 방문 미팅을 잡았다. 케일한테도 보고했다. 당시 케일은 글로벌 영업 헤드였다. 그랬더니 케일이 말했다. 자기가 한국 와서 같이 미팅하겠다고.
미팅 전날 케일이 한국에 왔다. 나는 공항으로 픽업을 갔다. 케일은 정장 차림이었다. 나는 청바지에 셔츠였다. 차 안에서 가벼운 얘기를 나눴다. 어떻게 지내냐. 영업 상황은 어떠냐. 가족은. 날씨는. 호텔까지 가는 동안 편안했다.
그때 케일이 말했다.
“나 정장 가져왔어.”
나는 그냥 나이스라고 했다.
그게 힌트인 줄 몰랐다.
다음 날 나는 청바지에 자켓, 구두를 신고 갔다. 케일 픽업하러 호텔 앞에 섰다. 케일이 나왔다. 나를 보더니 백인치고도 하얀 얼굴이 순간 빨개졌다. 잠깐이었다.
“오케이. 나이스 자켓.”
그렇게 말하고 차에 탔다.
오케이 나이스 자켓. 그 한마디가 이유였다. 따지지 않고 넘어갔다. 그게 좋은 사람처럼 느껴졌다.
센터에 도착하니 최식은이 정색하면서 차에서 넥타이를 꺼내 맸다. 그리고 나를 봤다.
“왜 정장 안 입었어요?”
엥엥대는 목소리였다. 서진우가 옆에서 말했다.
“요즘 누가 정장 입어요. 고객사도 정장 안 입는데.”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미국인이라 프리한 건 아니네.
그 사람이 한국 대표가 됐다.
서진우는 며칠 후 출근하지 않았다. 연락이 없었다. 휴가라고 했다. 며칠이 지났다.
복귀하던 날 서진우는 면도를 안 한 얼굴이었다. 사무실에 들어와서 자리에 앉았다. 아무 말 없었다. 청바지에 셔츠. 셔츠는 바지 속으로. 평소와 똑같았다. 근데 달랐다.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7.
GGP 미팅은 잘 됐다. 견적까지 갔다. 계약서 검토 단계까지 갔다.
근데 알카켐이 틀었다.
이 견적으로는 진행이 어렵다고. 센터에 적합하지 않은 비즈니스라고.
황당했다. 어이가 없었다. 케일은 중국에서 한국까지 날아와서 미팅에 참여했다. 본인도 중요한 고객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온 거 아닌가. 근데 회사는 뒤집었다.
그리고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혹시 정장 때문인가.
말도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그 생각이 지워지지 않았다.
나는 GGP 담당자한테 전화를 걸었다. 설명해야 했다. 미안하다는 말이 먼저 나왔다. 담당자는 조용히 들었다.
나는 하재수 사장을 떠올렸다. 서진우가 예전에 운영하던 포커스 센터. 그걸 하재수 사장이 5천만원에 인수해서 운영하고 있었다. 서진우 말로는 하재수 퇴직금이 5천이라 그거에 맞췄다고 했다. 잘됐으면 하는 마음에.
GGP한테 카고코리아를 소개했다. GGP 물량에 적합한 센터였다. 알카켐 내부에도 공유했다. 케일한테도 보고했다.
케일이 말했다.
“오케이.”
그게 전부였다. 중국에서 한국까지 왔다 갔는데. 오케이.
착각이었다.
겉으로는 항상 웃었다. 오케이. 나이스. 그런 사람이었다. 근데 속으로는 숫자만 봤다. 이익만 봤다. 현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관심이 없었다. 비용이 얼마냐. 수익이 얼마냐. 그게 전부였다.
GGP는 지금 하재수 사장의 주거래처다. 명절마다 하재수 사장한테서 연락이 온다. 개인 선물이다. 받을 때마다 생각한다. 잘 연결됐구나.
아틱스는 내가 1년에 걸쳐 직접 접촉하면서 관계를 형성해온 미국 화학 회사였다. 국내 법규상 유해물질을 취급했다. 한국 케미칼 법인과 합병을 앞두고 있었다. 재고 비축을 위한 센터가 필요했다.
그 아틱스가 부산 센터를 제안했다. 선계약도 하겠다고 했다.
서진우가 나한테 말했다.
“야, 아틱스 물량 확보됐잖아. 부산에 센터 지으면 되는데 본사가 안 움직여. 답답하다 진짜.”
“사장님이 맞는데 본사가 너무 보수적이네요.”
서진우가 천장을 봤다.
“글로벌 기업이 다 이래. 확정된 수요 아니면 안 움직여. 근데 한국 시장은 기다리면 늦는다고. 우리 은과장도 알잖아.”
본사도 긍정적으로 봤다. 홀트 대표가 미국에서 직접 부산을 방문했다. 예상 부지와 사업성을 검토하고 갔다.
근데 결국 아틱스만 믿고 투자할 수 없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나는 또 아틱스 담당자한테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도 미안하다고 했다. 회사가 결정한 거였다. 근데 전화는 내가 했다. 항상 그랬다. 부산 센터가 무산됐다고 설명했다. 담당자는 조용히 들었다.
서진우의 목소리가 달랐다. 예전보다 낮았다.
그 충돌이 반복됐다. 한 번, 두 번, 세 번. 서진우의 목소리가 점점 낮아졌다. 관계가 조금씩 틀어지고 있었다.
나는 그 사이에서 일했다. 아틱스 담당자와 미팅을 이어갔고, 센터 운영 계획을 만들었고, 본사 보고용 자료를 정리했다. 근데 결국 아무것도 진행되지 않았다. 자료는 쌓였고, 미팅은 계속됐고, 결론은 나지 않았다.
그게 10년이었다.
8.
서진우의 이직 제안은 놀랍지 않았다.
그 전에 이미 많은 것들이 있었다.
정장 사건 이후 케일과 사이가 서먹해졌다. 풀어보려고 했다. 케일이 한국 겨울에 왔을 때 호떡을 먹었다. 너무 맛있다고 레시피 알려달라고 농담처럼 말했다. 나는 집에 가서 레시피를 찾았다. 메일로 보냈다.
답이 없었다. 더 서먹해졌다.
나는 그냥 해봤던 거였다.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근데 그게 오히려 이상하게 읽혔나 싶었다.
케일이 나에 대한 평가를 하고 있다고 서진우를 통해 들었다. 회사에서 위기였다. 내가 크게 잘못한 건 없었다. 실적도 나쁘지 않았다. 근데 센터가 포화 상태였다. 증축하거나 투자하거나 신규 사업을 하지 않으면 성장이 정체된 상황이었다.
일하는 동기가 사라지고 있었다. 케일의 압박은 계속됐다. 서진우가 방어하고 있었지만 서진우도 대표에서 물러나면서 점점 뒤로 물러나는 상황이었다.
준비해야 할 것 같았다.
헤드헌터한테서 연락이 왔다. 이력서를 냈다. 1차 면접은 합격했다. 외국계 회사였다. 안정적인 곳이었다. 2차 면접에서 떨어졌다. 아쉬웠다.
그래도 알카켐을 떠나야 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서진우의 이직 제안이 왔을 때 그냥 더 나은 처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직장인으로서의 기대였다. 서진우와 일하는 건 괜찮았다. 동종 업계면 괜찮았다.
딱 하나 걸렸다.
정진동이었다.
설립된 지 3개월 된 법인이었다. 아무것도 갖춰져 있지 않았다. 정진동은 업계 인물도 아니었다. 이 사업이 돈 된다고 판단해서 들어온 실패한 사업가였다. 재력도 없었다. 전문성도 없었다. 심지어 그때는 서진우만 알았지 정진동은 만나보지도 못했다.
서진우가 말했다.
“내가 전면에 나서기 어려우니까 정진동이 앞에 있는 거야. 운영이랑 결정은 내가 다 해. 걱정 마.”
알겠다고 했다. 찜찜했지만.
아이가 있었다. 대출이 있었다. 달리 무엇을 선택할 수 있었을까. 케일의 압박. 서진우와 정진동의 신규 법인. 어디든 라인을 타야 했다. 일단 선택하고 고민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결정했다.
그런데 퇴사 전에 서진우한테서 연락이 왔다.
“1주일 쉬고 간다고 했는데, 정진동이 그냥 바로 오라고 한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연락이 왔다.
“그리고 받기로 한 연봉에서 좀 깎을 수 있냐고 물어봐달라고 한다.”
12년 차 직장인이었다. 회사에서 주기로 한 연봉을 내가 깎고 말고 정할 수 있나. 대꾸하지 않았다. 처음으로 서진우한테 곤란하다고 했다.
“저도 리스크를 안고 가는 건데 연봉까지 그러면 좀 그렇네요.”
서진우가 말했다.
“그렇지. 내가 정진동이랑 얘기해볼게.”
전화를 끊었다.
아직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사람이 벌써 이러고 있었다.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인물이었다.
9.
며칠 후 서진우한테서 연락이 왔다.
정진동이 밤에 보자고 하는데 시간 되냐고. 가능하다고 했다.
고기집이었다. 자리에 앉으니 서진우 조카 미정이 있었다. 이미 제이앤에스에 입사해 있었다. 혜연이라는 어린 여자도 있었다. 그리고 이상무.
정진동이 들어왔다. 170 정도 됐다. 굽 높은 신발을 신고 있었다. 넓은 이마에 머리가 고르게 나 있었다. 자세히 보면 모발이식 흔적이 보였다. 검은 뿔테 안경. 기지바지. 둥근 얼굴에 몸무게가 80은 넘어 보였다. 50대 중반이었다.
나를 보더니 말했다.
“반갑습니다. 잘해봅시다. 그리고 차장 말고 부장 하세요.”
웃으면서. 서울말인지 전라도 사투리인지 모를 어투로.
서진우와 입사 전에 차장으로 합의했었다. 확인까지 했다. 근데 첫 만남 자리에서 부장이 됐다. 웃으면서. 한마디로.
정진동 옆에 앉은 이상무가 눈에 들어왔다. 155 정도 됐다. 짧은 단발에 다부진 체구였다. 50대 초반으로 보였다. 옷차림이 단정했다. 말수가 적었다. 정진동이 떠드는 동안 조용히 앉아 있었다.
정진동이 소개했다.
“이 대리님이신데, 우리 사업에 투자하셨어요.”
이상무가 조용히 말했다.
“이상무입니다.”
그리고 서진우를 봤다.
“저는 정회장님 믿고 한 게 아니에요. 서 대표님 보고 결정했습니다. 저도 반도체 기업에 있어봤거든요. 이 사업 방향이 맞다고 봤어요.”
말투가 차분했다. 흔들림이 없었다.
“처음 투자해보는 건데 잘한 것 같아요.”
저 사람은 진짜로 믿고 있구나.
나도 그랬으니까.
문제는 시장이 아니었다. 그걸 그때는 몰랐다.
정진동이 오늘 오기로 했는데 오지 못한 투자자 얘기를 꺼냈다. 형수님이라고 불렀다. 대학 교수이자 IT 대기업 임원까지 한 분이라고 했다. 바쁜 일이 생겨서 오지 못했다고 했다. 서울말인지 전라도 사투리인지 모를 어투로.
정진동이 웃었다. 자주 웃었다. 뭐가 그렇게 좋은지 알 수 없었다. 그 웃음이 내내 조금 이상했다.
그러다 정진동이 말했다.
“야 은부장, 나 점집 갔는데 있잖아. 점쟁이가 그러는 거야. 정회장님은 큰 부자 될 사람이라고. 귀신도 놀라서 도망가는 기운을 가졌다고.”
서진우가 픽 웃었다.
“그렇군요. 우리 정회장님 기운이 세시죠.”
정진동이 안경 너머로 나를 봤다.
“야 은부장, 이 사업 잘 되면 나도 챙겨줄게. 내 아들들한테도 물려줘야 하고. 크게 한번 해보자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 말 안 했다.
이 사람이 앞으로 어떤 사람인지는 더 지켜봐야 알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냥 넘어갔다.
이상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근데 문제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항상 내가 잘해서 그런 줄 알았다.
그게 제일 위험한 착각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