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받았다 — AURANIM Original Series
CHAPTER 03
노란 철문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회사명은 모두 가명이며, 일부 배경은 각색되었습니다.
<이 글에 등장하는 인물과 회사명은 모두 가명입니다.>
노란 문 앞에 잠시 서 있었다.
페인트가 군데군데 벗겨져 있었고, 손잡이는 오래된 금속 특유의 차가운 감촉을 가지고 있었다. 사무실이라고 부르기엔 어딘가 어색한 공간이었다. 센터는 아직 준공도 되지 않았고, 이곳은 그저 임시로 마련된 공간에 불과했다.
그래도 이 문을 열면 시작이었다.
나는 손잡이를 잡고, 잠깐 숨을 고른 뒤 문을 열었다.
안에는 책상 세 개가 전부였다. 형광등은 어둡게 깜빡였고, 공기는 묘하게 눅눅했다.
“안녕하세요.”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넨 사람은 혜연이었다. 말투가 조금 어눌했고, 표정은 늘 조심스러웠다. 정진동의 비서라고 했다. 시키는 일을 그대로 수행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미정입니다.”
다른 한 명이 짧게 인사를 했다.
“서진우 조카예요. 디자인 맡고 있어요.”
센터 조감도와 홈페이지를 준비 중이라고 했다. 아직 실체가 없는 회사를 먼저 만들어가는 일처럼 보였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서진우는 없었다. 당연했다. 그는 여전히 알카켐 소속이었다. J&S는 아직 드러나서는 안 되는 회사였고, 이 사무실 자체가 일종의 그림자 같은 공간이었다.
며칠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됐다.
혜연도, 미정도 나를 보고하고 있었다.
몇 시에 출근했는지, 누구와 통화를 했는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까지.
모든 것이 서진우에게 전달되고 있었다.
그건 보고라기보다 감시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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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오후, 문이 열리며 굽 높은 구두 소리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정진동이었다.
그는 들어오자마자 나를 보며 말했다.
“은부장.”
반가움 같은 건 없었다.
“영업은?”
나는 잠깐 서 있다가 대답했다.
“진행 중입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의자를 끌어 앉으며 말했다.
“우리 이거, 매각 잘 돼야 돼.”
센터는 아직 완공도 되지 않았지만, 이미 목표는 운영이 아니라 매각이었다. 인사 대신 던진 말은 지시이자 경고처럼 들렸다.
그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나 이번에 차 계약했어. 두 대.” “ 한대만 하려고 했는데, 두대 하면 일주일 안에 출고된다네. 다른 사람이 먼저 계약해 놓은 게 있는데, 두대 하면서 나 먼저 해 달라고 했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당 2억 5천. 메르세데스.”
잠깐 멈췄다.
“PF로.”
나는 그를 바라봤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센터 PF 승인 났거든. 600억.”
말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오히려 잠깐 이해가 늦었다.
“600억이요?”
“어.”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돈 들어오면 뭐 해야 되겠어?”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웃었다.
“움직여야지.”
그는 손가락으로 책상을 가볍게 두드렸다.
“사업은 보여주는 거야. 돈이 돈을 부르는 구조야.”
나는 그 말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이해하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날 밤, 서진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진동이 차 두 대 뽑았거든.”
“네.”
“주차할 데가 없대.”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서진우가 말을 이었다.
“센터 PF 승인 나면서, 메르세데스 두 대 출고했어. 하나는 정진동, 하나는 내가 쓸 거고.”
그 말은 너무 자연스러웠다.
잠깐 멈췄다가, 그가 덧붙였다.
“근데 기존에 타던 차가 있거든. 15년 된 벤츠야. 예전에 사업 망하고 비닐하우스 살 때도 끌고 다니던 거.”
그제야 그림이 그려졌다.
“그걸 둘 데가 없어.”
잠깐 침묵이 이어졌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거절도, 질문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을 서진우가 받았다.
“일단 내가 맡을게. 나중에 정리하면 돼.”
전화가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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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정진동과 점심을 먹었다.
회사 근처 국밥집이었다. 600억 PF 승인을 기념해 메르세데스 두 대를 출고한 사람이 선택한 장소치고는 지나치게 소박했다.
그는 자연스럽게 술을 시켰다. 낮이었다.
“나 평도 출신이야.”
그가 말을 꺼냈다. 나는 조용히 밥을 먹으며 들었다.
“고등학교 중퇴해서 목포에서 차 팔았어. 처음엔 그냥 팔았지. 근데 어느 날, 고향 선배가 소개해준 다른 선배가 한 번에 차 세 대 계약을 하더라.”
나는 잠깐 손을 멈췄다.
“그 사람이 시행사 근무했어. 아파트 PF 받으니까 돈이 들어와. 차도 뽑고, 집도 사고. 그걸 보고 알았지. 나도 이걸 해야겠다”
그는 소주를 한 잔 들이켰다.
“그때부터 그 사람 밑에서 일 배웠어. 금융권에 동향 인맥 찾아가고, 괜찮은 땅 있으면 계약하고, 시행 설명서 만들고, 대출 일으키고. 그게 다야.”
그가 웃었다.
“깡만 있으면 돼. 시작할 때 잃을 게 없으면 되거든. PF는 대표가 다 책임지는 구조야. 주주들은 잘못되면, 돈만 잃으면 끝이고.”
잠깐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
“전라도 땅값이 쌌어. 20년 전에. 계약금도 얼마 안 됐어. 공사비도. 그냥 PF로 PF 막으면서 굴리는 거야. 분양되면 팔고. 안 되면 또 PF 일으키고.”
그는 국밥에 깍두기를 얹었다.
“안 멈추면 계속 가.”
나는 물었다.
“멈추면요?”
그는 나를 보며 웃었다.
“끝이야.”
잠깐 침묵이 흘렀다.
“내가 일으킨 PF만 1조가 넘어.”
나는 밥을 먹었다.
“강남 펜트하우스에도 살았어. 몇백억짜리 별장도 있었고. 이혼도 세 번 했는데 위자료도 다 법인에서 줬지.”
담담했다. 자랑인지 고백인지 몰랐다.
“2008년에 망했어. 대출 상환이 안 되더라고. 감방도 갔지. 파산하고 신용불량자 됐어.”
나는 잠시 수저를 내려놨다.
“그때 법을 알아야겠다 싶었어. 야간 법대 다녔어. 법조계 인맥 만들고. 이제 금융도 알고 법도 아니까. 다시 시작한 거야.”
“경기도에서요?”
“어. 근데 내가 신용불량자잖아. 법인은 내 이름으로 하고, 자금은 와이프한테 다 넘겼지.”
그는 잠깐 멈췄다.
“근데 법인 망하고 나니까 와이프가 그 돈 들고 도망갔어.”
정진동이 웃었다.
“아직 이혼 소송 중이야.”
국밥집에 다른 손님들 소리가 들렸다.
“그러다가 비닐하우스에서 몇 년 살았지. 그러다가 PF 땅 보러 다니다가 센터 알게 되고 , 서진우 만난 거야.”
식사가 끝났다. 계산은 정진동이 했다.
사무실로 돌아왔다. 서랍을 열었다.
서류 하나가 들어 있었다.
각서였다. 벤츠. 보관. 변제.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전화에서는 분명 서진우가 맡는다고 했는데, 서류에는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서명란은 비어 있었다.
서랍을 닫았다.
내 할 일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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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서진우에게서 연락이 왔다.
“개인사업자 있어?”
“있습니다. 한길물산이라고 있어요.”
“PF 승인됐어. 영업 위탁 계약 하나 쓰면 돼. 2.5억짜리 두 건. 수수료는 200.”
금액의 문제가 아니었다. 흐름의 문제였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계약서 보낼게. 오늘 안에.”
전화가 끊겼다.
그날, 면접이 있었다. 외국계 회사였다. 두 번째 면접이었다.
“Why are you leaving your current company?”
질문을 듣고 잠깐 멈췄다.
“I want to work in a more structured environment.”
거짓말은 아니었다.
저녁이 되자 메시지가 하나 왔다.
“내 법인으로 처리했어.”
서진우였다. 곧이어 메일이 도착했다. 불합격 통보였다.
나는 한동안 화면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가족 생각이 났다. 대출이 떠올랐다.
계산은 길지 않았다. 남는 게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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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다시 노란 문 앞에 섰다.
잠깐 멈췄다가 문을 열었다.
정진동은 돈으로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PF로 판을 만드는 사람이었다.
서진우는 그 판을 실행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안에 들어와 있었다.
나는 구조를 이해했다. 그 구조가 문제라는 건 이해하지 못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