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받았다 — AURANIM Original Series
CHAPTER 08
진술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회사명은 모두 가명이며, 일부 배경은 각색되었습니다.
<이 글에 나오는 회사, 인물은 가명입니다. >
경찰서에 가기 전에 먼저 변호사 형을 찾아갔다.
사무실 문이 닫히자마자 형이 말했다.
“업무상 배임 횡령.”
나는 눈을 깜빡였다.
“배임이요?”
형이 서류를 넘기며 말했다.
“20억.”
말이 바로 이해되지 않았다.
“20억이요?”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네가 증명해야 해.”
배임.
20억.
뉴스에서나 보던 단어였다.
내 이야기 같지 않았다.
형이 말했다.
“자료 다 챙겨.”
“뭐를요?”
“레솔브 계약서.”
“사이언스켐 계약서.”
“레솔브 통장 거래내역.”
“고객 계약서.”
잠깐 멈췄다가 덧붙였다.
“말로 설명하면 안 돼. 문서로 증명해야 돼.”
나는 그날 밤까지 자료를 모았다.
계약서.
통장.
메일.
내가 했던 일들을 전부 꺼냈다.
조사 당일.
회사에는 휴가를 냈다.
집에는 출근한다고 말했다.
아침 일찍 경찰서로 갔다.
입구를 지나는데 숨이 얕아졌다.
수사관 앞에 앉았다.
눈이 마주쳤다.
설명하기 어려운 표정이었다.
이미 결론을 내린 사람의 눈이었다.
조사는 인적사항부터 시작됐다.
이름.
직업.
학력.
형사는 적다가 갑자기 물었다.
“왜 레솔브 만든 겁니까?”
나는 입을 열기도 전에 그가 말했다.
“회사 다니면서 따로 이익 보려고 한 거죠?”
잠깐 웃더니 말했다.
“그거 범죄입니다.”
나는 가만히 있었다.
이미 범죄자로 보고 있었다.
“아닙니다.”
내가 말했다.
“정진동하고 서진우 지시였습니다.”
형사가 고개를 들었다.
나는 계약서를 꺼냈다.
“여기 보시면 정진동도 직접 서명했습니다.”
형사가 계약서를 내려다봤다.
“알카켐 고객사 영업을 하려면 별도 영업 법인이 필요하다고 먼저 이야기했습니다.”
나는 최대한 차분하게 말했다.
“그 구조 그대로 진행한 겁니다.”
형사가 바로 물었다.
“왜 별도 법인이 필요한데요?”
나는 숨을 고르고 말했다.
“서진우는 알카켐 출신이었습니다.”
“그래서요?”
“겸업 금지 조항 때문에 직접 동종업 영업을 하면 문제가 생길 수 있었습니다.”
형사가 잠깐 나를 봤다.
이해 못 한 표정이었다.
나는 다시 설명했다.
“그래서 정진동에게 먼저 보고했고, 고객 계약만 진행하는 영업 법인을 따로 만든 겁니다.”
“운영은 사이언스켐이 하고요.”
형사가 말을 끊었다.
“아니.”
그가 펜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결국 레솔브 만든 건 본인 아닙니까.”
“네. 하지만—”
“대표도 형이고.”
그가 서류를 넘겼다.
“등기 이사도 본인 이름 들어가 있고.”
나는 다시 설명했다.
“그 구조를 정진동도 알고 있었고, 직접 계약서에도 서명했고—”
형사가 내 말을 끊었다.
“근데 지금 정진동이 고소했잖아요.”
같은 말이 반복됐다.
나는 구조를 설명했고,
형사는 명의를 말했다.
나는 지시 관계를 설명했고,
형사는 등기부등본을 봤다.
말이 계속 어긋났다.
“아니 그러니까…”
내가 다시 말했다.
“정진동이 직접 보고받았고, 고객 유치도 같이 진행했고—”
형사가 또 끊었다.
“근데 왜 본인 이름으로 법인을 했냐고요.”
머릿속이 멍해졌다.
오래된 카세트테이프가 늘어진 채 계속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그때 옆에 있던 변호사 형이 작게 말했다.
“표정 풀어.”
나는 형을 봤다.
형이 낮게 덧붙였다.
“수사관 말에 성실하게 답해.”
“친절하게.”
나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형사가 다시 물었다.
“레솔브 실제 역할이 뭡니까?”
나는 대답했다.
“고객 계약만 했습니다.”
“운영은?”
“사이언스켐입니다.”
형사가 펜을 멈췄다.
“그럼 고객은 누구랑 계약한 겁니까?”
“레솔브입니다.”
“근데 운영은 사이언스켐?”
“네.”
형사가 고개를 기울였다.
“그게 정상적인 구조라고 생각합니까?”
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때는…”
말이 느려졌다.
“…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형사가 나를 봤다.
“지금은요?”
나는 눈을 내렸다.
“… 지금은 다르게 생각합니다.”
형사가 서류를 정리했다.
“알겠습니다.”
잠깐 멈췄다가 말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리가 무거웠다.
문을 나가기 전에 형사가 말했다.
“다음 조사 또 있을 겁니다.”
복도를 걸어 나왔다.
밖으로 나오자 햇빛이 눈에 들어왔다.
잠깐 멈춰 섰다.
그제야 알았다.
이건 해명이 아니었다.
증명이었다.
그리고,
아직 시작도 아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