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받았다 — 10화. 읽었다는 이유로

그냥 받았다 — AURANIM Original Series

CHAPTER 10

읽었다는 이유로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회사명은 모두 가명이며, 일부 배경은 각색되었습니다.

< 이 글에 나오는 인물, 회사명은 가명입니다. >

서진우한테 연락이 온 건 저녁이었다.

“은부장.”

목소리가 달랐다.

낮고, 납작했다.

“무슨 일입니까?”

“압수수색 당했어.”

나는 바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언제요?”

“어젯밤에.”

잠깐 침묵이 흘렀다.

“알카켐이야.”

서진우가 낮게 말했다.

수사관들이 새벽 가까운 시간에 들이닥쳤다고 했다.

여럿이었다.

노트북을 가져갔고,

외장하드를 가져갔고,

서류도 전부 가져갔다.

“장앤고야.”

나는 그 이름을 알고 있었다.

뉴스에서 보던 이름이었다.

국내 최대 로펌.

대기업들이 움직일 때 붙는 이름.

“알카켐이 장 앤 고 선임했어.”

공기가 달라졌다.

정진동은 지저분하게 싸웠다.

욕을 했고,

협박했고,

밤중에 전화했다.

근데 이건 달랐다.

조용했고,

정확했고,

체계적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법으로 설계된 싸움 같았다.

서진우가 낮게 말했다.

“은부장.”

“네.”

“네 이름도 나왔어.”

나는 잠깐 멈췄다.

“제가요?”

“어.”

“왜요?”

서진우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무슨 순서로 말해야 할지 고르는 사람 같았다.

“내가 너한테 보낸 메일 있잖아.”

“…네.”

“거기에 알카켐 영업 내용 들어 있었어.”

나는 말이 없었다.

“거래처.”

“운임.”

“계약 구조.”

잠깐 침묵이 흘렀다.

“메일 서버 기록에 다 남아.”

서진우가 낮게 말했다.

“누가 열었는지.”

그가 숨을 한번 고르고 말했다.

“언제 읽었는지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메일을 읽었다.

그건 사실이었다.

그때는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같이 일하고 있었고,

같은 판 안에 있었고,

같이 움직인다고 생각했다.

그때만 해도 서진우는 정진동을 형님이라고 불렀다.

정진동도 사람들 앞에서 말했다.

“우리 진우.”

둘은 늘 같이 다녔다.

같이 술 마시고,

같이 PF 이야기를 하고,

같이 센터 도면을 봤다.

정진동이 앞에서 판을 만들면,

서진우는 뒤에서 실행했다.

나는 그 사이에서 움직였다.

근데 지금은 아니었다.

다음 날 군대 선임이었던 변호사 형에게 전화가 왔다.

제대 후에도 계속 연락하고 지낸 사람이었다.

지금은 형사 사건을 주로 맡고 있었다.

“알카켐이 너도 고소했어.”

나는 천천히 의자에 기대앉았다.

“죄명이 뭡니까?”

형이 짧게 말했다.

“영업비밀 누설.”

잠깐 멈췄다가 덧붙였다.

“비밀유지 위반.”

나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제가 한 게 뭔데요.”

형이 말했다.

“메일 읽은 거.”

나는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그게 다예요?”

“그게 다야.”

창밖을 봤다.

훔치지 않았다.

요청하지도 않았다.

메일이 왔다.

열었다.

읽었다.

그게 전부였다.

근데 이제는 그게 범죄가 되어 있었다.

형이 말했다.

“장앤고야.”

“가볍게 보면 안 돼.”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서진우 자료랑 네 자료 분리해야 해.”

“같이 엮이면 안 된다.”

나는 짧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한동안 앉아 있었다.

국내 최대 로펌이 내 이름을 알고 있었다.

내가 어떤 메일을 읽었는지 알고 있었고,

언제 열었는지도 알고 있었고,

얼마 동안 봤는지도 알고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아무것도 숨기지 않았다.

숨길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게 문제였다.

그날 밤 서진우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사장님.”

“어.”

“그 메일들… 왜 저한테 보내신 겁니까.”

잠깐 침묵이 흘렀다.

“같이 일하던 사람이니까.”

나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게 다입니까?”

서진우가 낮게 말했다.

“그때는…”

잠깐 숨소리가 들렸다.

“그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미안하다.”

서진우가 먼저 말했다.

두 번째였다.

첫 번째는 마지막 계약서를 건넸을 때였다.

집에 들어왔다.

아이는 자고 있었다.

나는 식탁에 앉았다.

장 앤 고.

영업비밀.

비밀유지 위반.

메일을 읽었다는 이유로.

아무것도 훔치지 않았는데,

증명해야 할 것들은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나는 다시 노트북을 열었다.

노트북 화면에 메일 아이콘이 떠 있었다.

나는 한동안 그걸 누르지 못했다.

이번에는 소송 파일만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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