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받았다 — AURANIM Original Series
CHAPTER 11
조문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회사명은 모두 가명이며, 일부 배경은 각색되었습니다.
<이 글에 나오는 인물, 회사 명은 가명입니다.>
렉스는 내가 알카켐에 입사하기 전에 다니던 회사였다.
특수화물.
위험물.
화학품.
내가 영업을 배운 곳이었다.
김대표는 그때 팀장이었다.
말이 많지 않았다.
대신 숫자를 정확히 봤고, 사람을 오래 봤다.
영업사원들이 실적 이야기를 할 때도 혼자 다른 걸 보는 사람이었다.
누가 오래 버틸 사람인지.
누가 결국 떠날 사람인지.
그런 걸 봤다.
몇 년 뒤 그는 렉스 최초의 한국인 대표가 됐다.
언젠가 술자리에서 말한 적이 있었다.
“연봉은 그렇게 올리는 거야.”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회사 오래 다닌다고 올려주는 거 아니다.”
사실 김대표도 한때 알카켐으로부터 이직 제안을 받았었다.
업계에서는 거의 간다는 분위기였다.
근데 결국 가지 않았다.
알카켐 제안을 이용해 렉스와 협상했고, 연봉과 권한을 더 가져갔다.
그렇게 대표가 됐다.
내가 알카켐으로 이직한다고 했을 때도 비슷했다.
김대표가 담배를 피우며 말했다.
“원하면 내가 추천해 줄 수 있어.”
“괜찮으십니까?”
그가 웃었다.
“회사에 충성하지 마.”
잠시 연기를 뱉고 덧붙였다.
“네 몸값에 충성해.”
그 말은 오래 기억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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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켐 사건이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연락이 왔다.
“은부장.”
“네, 대표님.”
“자리 하나 있어.”
잠깐 침묵이 흘렀다.
“와.”
길게 설명하지 않았다.
나도 길게 묻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다시 렉스로 갔다.
영업부장이었다.
첫 출근 날 김대표가 말했다.
“실적만 내.”
커피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나머지는 내가 막을게.”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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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 서진우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었다.
혼자는 아니었다.
대기업 시행사가 있었다.
그쪽에서 PF를 진행하고, 서진우가 대표를 맡는 구조였다.
최용철도 그 안에 있었다.
나는 그 이름을 알고 있었다.
알카켐에 부지를 팔았던 사람.
나중에는 정진동에게도 부지를 팔았던 사람.
그 과정에서 수백억을 벌었다고 했다.
업계에서는 유명한 사람이었다.
근데 돈을 버는 것과 지키는 건 다른 일이었다.
최용철은 강원랜드 도박에 빠졌다.
돈이 사라졌고,
사람들도 떠났다.
나중에는 서진우와도 멀어졌다고 들었다.
지분은 남아 있었지만, 의결권은 이사회에서 사실상 잃어버린 상태였다.
서진우는 그 사업에 직접 돈을 넣었다.
3억.
PF가 일어나지 않으면 그대로 묶이는 돈이었다.
한 달쯤 지났을 때 서진우에게 연락이 왔다.
“은부장.”
“네.”
“렉스에서 센터 이용 계약서 하나 써줄 수 있어?”
나는 잠깐 말이 없었다.
서진우가 낮게 말했다.
“물량 조금만 연결되면 PF 다시 돌릴 수 있을 것 같아.”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었다.
센터 이용 계약.
실적.
매출.
그리고 PF.
“확인해 보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김대표 방으로 갔다.
김대표는 끝까지 듣고도 바로 말하지 않았다.
손가락으로 책상을 천천히 두드렸다.
“은부장이 알아서 진행해”
김대표가 잠깐 웃었다.
“재밌네.”
그 웃음이 기억에 남았다.
잠시 후 그가 말했다.
“계약은 할 수 있어.”
나는 고개를 들었다.
“대신 조건은 우리가 정해.”
“어떤 조건입니까?”
“우리가 언제든 계약 해지할 수 있는 조건.”
잠깐 멈췄다.
“주도권도 우리가 가져.”
그 순간 알았다.
김대표는 서진우를 도우려는 게 아니었다.
활용하려는 거였다.
그리고 서진우도 그걸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둘 다 서로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
완전히 믿지는 않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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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 입원한 건 그해 가을이었다.
암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치료 중이라고 했다.
괜찮다고 했다.
형이 직접 그렇게 말했다.
나는 믿었다.
믿고 싶었다.
열흘쯤 지났을 때 형수님에게 전화가 왔다.
“형이…”
그 말이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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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는 삼일장으로 했다.
서울 외곽 병원 장례식장이었다.
빈소는 조용했다.
이틀째 저녁이었다.
서진우가 먼저 왔다.
검은 정장이었다.
조의금을 냈다.
내 어깨를 한번 잡았다.
“미안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서진우는 빈소 안을 잠깐 바라봤다.
영정 사진.
국화.
향 냄새.
형광등.
그리고 말없이 복도로 나갔다.
잠시 후 김대표가 들어왔다.
검은 코트 차림이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표님.”
김대표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나는 잠깐 망설이다 말했다.
“서 사장님 와 계십니다.”
김대표 눈빛이 잠깐 변했다.
“그래?”
나는 복도로 걸어갔다.
서진우가 벽 쪽에 기대 서 있었다.
“사장님.”
그가 고개를 들었다.
“렉스 김대표님 오셨습니다.”
두 사람이 마주 봤다.
나는 소개했다.
“예전에 말씀드린 분입니다.”
두 사람은 악수했다.
짧았다.
근데 둘 다 상대를 훑어보고 있었다.
김대표가 먼저 말했다.
“많이 바쁘시죠?”
서진우가 웃었다.
“덕분에요.”
잠깐 정적이 흘렀다.
서진우가 말했다.
“은부장이 이야기했을 겁니다.”
김대표가 고개를 끄덕였다.
“들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김대표가 잠시 웃었다.
“검토는 하고 있습니다.”
둘 다 무슨 이야기인지 알고 있었다.
근데 직접 말하지는 않았다.
나는 옆에 서 있었다.
형 장례식장이었다.
그 복도에서 물량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다.
센터 가동률.
보관 단가.
PF.
한 사람은 살아남으려 했고,
한 사람은 기회를 찾고 있었다.
둘 다 형 영정사진에서 몇 미터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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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뒤 김대표가 빈소 안으로 들어갔다.
국화 앞에 고개를 숙였다.
짧게 묵념했다.
그리고 다시 나왔다.
“은부장.”
“네.”
“복귀하고 이야기하자.”
김대표는 그렇게 말하고 돌아갔다.
서진우도 잠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은부장.”
“네.”
“형… 좋은 분이었어.”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서진우가 돌아서 복도를 걸어갔다.
검은 정장이 형광등 아래로 천천히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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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시 빈소 안으로 들어갔다.
형 영정 앞에 앉았다.
형이 예전에 물었었다.
“괜찮은 일이냐?”
나는 그때 대답하지 못했다.
지금도 대답은 없었다.
형광등이 조용히 울리고 있었다.
국화 냄새가 났다.
복도에서는 아직 사람들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가만히 앉아 있었다.
형은 죽었고,
살아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거래를 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