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의 경제학 EP.01 — 성수동, 창고 위에 뜨지 않는 별

맛집의 지도와 아파트의 지도를 겹쳐 읽는 연재. 물류인의 눈으로 서울의 이상한 지도를 추적한다.

일요일 밤의 상차

일요일 밤 열한 시, 성수동 연무장길. 셔터 내린 카페들 사이에 5톤 윙바디 한 대가 후진으로 붙는다. 지난 2주 동안 줄이 백 미터씩 늘어섰던 어느 브랜드의 팝업스토어가 해체되는 중이다. 진열대가 뜯기고, 조명이 내려오고, 어제까지 ‘공간의 감성’이라 불리던 것들이 완충재에 싸여 화물이 된다. 새벽이 되기 전에 트럭은 떠나고, 월요일 아침이면 같은 자리에 다른 브랜드의 설치 팀이 들어온다.

나는 직업상 상차와 하차를 보는 사람이다. 그 눈으로 보면 이 장면의 의미는 분명하다. 성수에서 가게는 개업하지 않는다. 입고된다. 그리고 2주 뒤에 출고된다.

이 연재는 여기서 시작한다. 서울에서 가장 뜨거운 상권이라는 이 동네에, 왜 미식의 별은 뜨지 않는가.

두 장의 지도

지도 두 장을 겹쳐 보자. 아파트 시세 지도에서 성수는 붉다. 서울숲 옆 트리마제, 아크로서울포레스트, 갤러리아포레 — 국내 실거래가 최상위권을 다투는 단지들이 강 건너 압구정과 시세를 겨룬다. 상권 지도는 더 뜨겁다. 크래프톤이 이마트 성수점 부지를 1조 2,200억 원에 사들였고, 현지 중개업소에서는 “성수는 이제 개인이 들어올 수 없다”는 말이 나온다.

분명히 하자. 성수에 맛집이 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정반대다 — 예약·웨이팅 플랫폼 캐치테이블이 연말 핫플 코스로 꼽은 다섯 지역의 맨 앞이 성수였고, 예약 상위 명단에는 성수의 살라댕템플 같은 이름이 오른다. 줄의 지도에서 성수는 서울 최상위다. 그런데 미식의 지도를 겹치면 그림이 뒤집힌다. 미쉐린 공식 사이트의 2026년 서울 빕 구르망 53곳을 주소지 기준으로 전수 집계하면 성동구는 두 곳, 종로·중구는 합쳐 열아홉, 마포는 열네 곳이다. 줄은 서울에서 가장 긴 동네가, 오래 버틴 맛의 인증에서는 변두리인 것이다.

그러니 질문은 “성수엔 왜 맛집이 없나”가 아니다. 이렇게 물어야 한다 — 성수의 그 긴 줄들은 왜 십 년을 가지 못하는가. 흔한 답은 “아직 뜨는 중이라 인증이 늦게 오는 것”이라는 시차론이다. 나는 이 답을 의심한다. 성수의 문제는 시차가 아니라 구조다. 이 동네는 긴 줄을 만드는 데는 서울 최적인데, 그 줄이 뿌리내릴 시간을 시장에서 팔아 버렸다.

층고의 유산

성수가 왜 떴는지부터 정확히 하자. 이 동네는 창고와 공장의 땅이었다. 정미소와 인쇄소, 그리고 한때 서울 수제화의 심장이던 구두 공장들. 연무장길이라는 이름부터가 군사 연무장 자리라는 뜻이다. 대림창고 — 지금은 성수를 대표하는 카페가 된 그 건물 — 는 실제로 정미소였고 창고였다.

브랜드들이 이 건물들을 사랑하게 된 이유를 사람들은 감성이라 부르지만, 물류인의 눈에는 물성이 먼저 보인다. 창고는 층고가 높고 기둥이 적다. 화물이 드나들던 진입로가 넓고, 바닥은 무거운 것을 견딘다. 전시와 팝업이 원하는 조건을, 이 건물들은 물건을 쌓던 시절부터 갖추고 있었다. 성수의 부흥은 미학의 승리이기 이전에 물류 인프라의 재활용이었다. 물건을 쌓던 공간이 경험을 쌓는 공간이 된 것이다.

디올이 성수 한복판에 유리 궁전을 지어 몇 년째 운영하는 것이 이 동네의 위상을 요약한다. 명품 하우스가 임시로 왔다가 눌러앉는 동네 — 그게 지금의 성수다.

시간이 가장 비싼 동네

그런데 그 성공이 이 동네의 시간 구조를 바꿔 놓았다.

연무장길 일대의 평당 임대료는 지난해 3분기 기준 21만 원 선으로 1년 새 33% 올랐다. 2년 전 월세 150만 원이던 공간이 300만 원이 된 사례가 보도됐고, 권리금은 평당 2,000만~3,000만 원까지 형성됐다. 여기까지는 뜨는 상권의 흔한 풍경이다. 성수를 다른 동네와 구분 짓는 건 그다음이다 — 팝업이라는 초단기 시장.

10평 공간의 팝업 임대료가 주당 500만 원, 20평대는 주당 1,600만 원. 연말에는 한 주에 50개 넘는 팝업이 열렸다. 1~2주짜리 단기 임대는 상가임대차보호법의 적용을 받지 않아 오를 수 있는 만큼 오른다. 계산해 보면 이 시장의 논리가 드러난다.

같은 10평의 한 달 — 일반 임대 월 300만 원 vs 팝업 단기임대 월 2,000만 원, 6.7배 차이

같은 10평에서 건물주가 한 달에 벌 수 있는 돈이, 2년짜리 세입자를 받으면 300만 원이고 2주짜리 팝업을 돌리면 2,000만 원이다. 6.7배. 이 격차 앞에서 건물주의 선택은 정해져 있다. 그리고 그 선택이 쌓이면 동네의 시간 단위가 바뀐다. 성수의 상업 공간은 이제 월 단위가 아니라 주 단위로 거래된다. 서울에서 시간이 가장 비싼 동네가 된 것이다.

육수의 시간, 팝업의 시간

미식의 별은 어떤 시간에서 자라는가. 한 자리에서 육수를 십 년 우려낸 집, 실패한 메뉴를 버리는 데 몇 계절을 쓰는 집, 주인이 단골의 취향을 외우는 집. 빕 구르망이든 스타든, 미식의 인증은 결국 느린 시간에 대한 인증이다. 십 년짜리 시간이 필요한 업이, 2주짜리 시간이 표준이 된 시장에서 자랄 수 있을까.

임대료가 33% 오를 때 팝업은 견딘다. 2주만 견디면 되니까. 못 견디는 쪽은 정해져 있다. 성수의 수제화 공장들은 임대료에 밀려 동네를 떠나는 중이고, 30년 된 가게들이 같은 길을 걷는다. 성동구가 2017년부터 임대료를 물가상승률 수준으로 묶는 건물주에게 용적률 인센티브를 주는 상생협약을 운영해 왔고 — 협약 건물의 임대료 상승률은 2.49%로 유의미하게 낮았다 — 그 느린 시간의 섬들 덕에 성수에 그나마 세 개의 리본이 남아 있다. 다만 협약에는 구속력이 없고, 팝업 시장은 협약 바깥에 있다.

그리고 그 세 개의 리본마저 자세히 보면 이 동네의 방향을 말해 준다. 게방식당 성수점 — 서산 암꽃게 간장게장으로 8년 연속 미쉐린 가이드에 오른 집이다. 이 집이 있는 곳은 골목의 노포 건물이 아니라 신축 타워의 지하 1층이고, 인테리어는 편집숍 같고, 손님의 절반이 외국인이며, 게장 정식은 3~4만 원대다. 빕 구르망은 본래 ‘합리적 가격의 좋은 식사’ 인증인데, 성수에서는 그 ‘합리적 가격’이 4만 원이다. 성수의 검증된 맛조차 이미 골목이 아니라 타워 안에, 동네 손님이 아니라 관광객 곁에 있다.

가설 하나

그래서 시차론은 답이 아니다. 성수는 별이 늦게 오는 동네가 아니라, 별이 자랄 토양 — 긴 임대차의 시간 — 을 주 단위로 쪼개 판 동네다. 이 연재의 첫 가설을 여기서 얻는다. 미식의 별은 임대차 계약의 길이에 비례한다. 별의 지도는 맛의 지도가 아니라, 시간을 길게 빌릴 수 있는 자리의 지도다.

일요일 밤의 연무장길로 돌아가자. 트럭이 떠난 자리는 월요일이면 새 브랜드로 채워질 것이고, 그 회전은 건물주에게 월세의 몇 배를 벌어 줄 것이다. 성수는 실패한 상권이 아니다. 너무 성공해서, 십 년짜리 꿈이 들어올 자리가 없어진 상권이다. 이 동네의 시간은 뜨는 맛집 — SNS가 발견하고 줄이 따라붙고 두어 해 만에 임대료가 수확해 가는 — 을 대량 생산하지만, 남는 맛집은 만들지 못한다. 줄의 길이와 시간의 길이는 다른 것이다.

사람이 많으면 맛집이 많을 것이라는 상식도 이 연재는 곧 배신할 것이다. 서울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축에 드는 노원·도봉·강북의 지도에서 미식의 인증을 찾기는 성수보다 어렵다. 별은 인구를 따라가지 않는다. 그럼 무엇을 따라가는가 — 이 질문을 들고, 다음 화는 대치동으로 간다. 시세는 서울 최상급인데 별이 없는 이유가 성수와는 정반대인 동네다.


참고 자료
미쉐린 가이드 서울·부산 2026 빕 구르망 / 경향신문 「’팝업’이 밀어올린 임대료 — 성수동은 젠트리피케이션을 막을 수 있을까」(2024.3, 임대료·권리금·팝업 시세·상생협약) / 아시아경제 「핫플 된 성수동에서 사라지는 수제화 공장」(2024.3) / 다이닝코드·미쉐린 가이드 게방식당 성수점 정보 / 캐치테이블 2024 인기 맛집 랭킹 보도(뉴시스). 수치는 보도 시점 기준이며 차트의 월 환산은 보도 시세의 단순 계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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