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받았다 — AURANIM Original Series
CHAPTER 13
첨부파일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회사명은 모두 가명이며, 일부 배경은 각색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우편함이 아니었다.
문자였다.
회의 중이었다.
테이블 위에서 휴대폰이 짧게 울렸다.
02로 시작하는 번호였다.
[출석요구서가 발송되었습니다.]
발신 기관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검찰청.
나는 화면을 뒤집어 놓았다.
회의는 계속됐다.
운임 이야기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숫자를 받아 적었고,
웃어야 할 때 웃었다.
무슨 이야기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퇴근하고 변호사 형 사무실로 갔다.
형이 기록 사본을 보고 있었다.
“경찰이랑 뭐가 달라요?”
내가 물었다.
형이 안경을 벗었다.
“경찰은 묻는 사람이야.”
“검사는?”
“결정하는 사람.”
형이 서류를 한 장 넘겼다.
“준비는 똑같이 하자.”
“계약서.”
“통장.”
“메일.”
나는 웃음이 나올 뻔했다.
같은 목록이었다.
몇 년 전 그날 밤과.
다른 게 하나 있었다.
이번에는 내가 목록을 외우고 있었다.
폴더가 이미 정리되어 있었다.
날짜별로.
사건별로.
나는 그게 더 무서웠다.
이런 일에 익숙해진 내가.
형이 가방을 챙기며 말했다.
“같이 들어갈게.”
조사는 오후 1시였다.
회사에는 휴가를 냈다.
집에는 출근한다고 말했다.
똑같았다.
몇 년 전과.
점심을 먹어야 했는데,
넘어가지 않았다.
국밥을 반쯤 남기고 일어났다.
검찰청 건물은 차가웠다.
여름인데 차가웠다.
에어컨 때문이 아니었다.
건물 자체가 그런 온도를 가지고 있었다.
7층.
복도 맨 끝 방이었다.
복도를 걷는 동안 구두 소리만 났다.
문 앞에서 형이 말했다.
“성실하게.”
“친절하게.”
“알아요.”
“하나 더.”
형이 나를 봤다.
“오늘 네가 하는 말은 전부 문장이 돼.”
문을 열었다.
방 안에는 세 사람이 있었다.
검사 하나.
조사관 둘.
검사는 젊었다.
나보다 어려 보였다.
책상 위에 기록이 쌓여 있었다.
포스트잇이 촘촘히 붙어 있었다.
노란색.
분홍색.
내 몇 년이 저 안에 있었다.
조사가 시작됐다.
조사관의 타자 소리가 배경음처럼 깔렸다.
가끔 전화가 울렸다.
조사관 하나가 낮은 목소리로 받고,
끊고,
타자를 이어 쳤다.
내 몇 년이 걸린 방에서,
전화는 아무렇지도 않게 울렸다.
이 사람들에게는 평범한 오후였다.
검사는 경찰과 달랐다.
말을 끊지 않았다.
끝까지 들었다.
다 듣고,
한 박자 쉬고,
다음 질문을 했다.
그 한 박자가 무서웠다.
경찰서에서는 벽에 대고 말하는 기분이었다.
여기서는 저울 위에서 말하는 기분이었다.
검사가 통장 사본을 넘겼다.
레솔브 통장이었다.
한 장.
두 장.
넘기는 소리만 났다.
“이 법인 계좌에,”
검사가 말했다.
“입금 내역이 없네요.”
“네.”
“수익이 없었다는 겁니까?”
“네.”
“한 건도?”
“한 건도 없습니다.”
검사가 통장을 내려놨다.
“그럼 은부장 님이 가져간 돈은요?”
“없습니다.”
“급여도, 배당도, 수수료도?”
“없습니다.”
검사가 잠깐 나를 봤다.
“이상하네요.”
“뭐가요?”
“돈을 받은 사람이 없는데,”
검사가 기록을 톡톡 두드렸다.
“고소장에는 횡령이라고 적혀 있어서요.”
나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
그건 내가 몇 년째 하고 싶던 말이었다.
그 말을 검사가 하고 있었다.
질문이 이어졌다.
“영업법인은 왜 필요했습니까?”
나는 설명했다.
겸업 금지.
별도 법인.
고객 계약.
몇 년째 하는 설명이었다.
이제는 내 이력서보다 매끄럽게 나왔다.
“법인 대표는 누구였습니까?”
“형입니다.”
“친형이요?”
“네.”
“대표 조사도 필요할 텐데요.”
나는 잠깐 말을 멈췄다.
“돌아가셨습니다.”
검사가 고개를 들었다.
“언제요?”
“작년입니다.”
검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타자 소리가 잠깐 멈췄다.
그 방에서 처음으로,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계약 구조를 다시 보죠.”
검사가 도면을 그리듯 물었다.
“고객사는 레솔브와 계약했고.”
“네.”
“레솔브는 다시 창고 법인과 계약했고.”
“네.”
“그 창고 법인이 정진동 씨 회사네요.”
“네.”
“계약서에 있는 창고 주소도,”
검사가 서류를 짚었다.
“정진동 씨 창고고.”
“네.”
검사가 의자에 등을 기댔다.
“그러니까 물건은 정진동 씨 창고로 들어갔고,”
“보관료도 정진동 씨 쪽으로 갔고,”
“이 구조에 정진동 씨가 직접 서명했다.”
“네.”
“근데 그 정진동 씨가,”
검사가 고소장을 들었다.
“이 구조를 고소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질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검사가 혼잣말처럼 말했다.
“왜 고소하셨을까요.”
나는 그 말을 오래 기억할 것 같았다.
내가 몇 년 동안 밤마다 하던 질문을,
나를 조사하러 온 사람이 하고 있었다.
서진우 이야기가 나온 건 그다음이었다.
“서진우 씨가 이 구조를 만들 때,”
검사가 물었다.
“본인한테 뭐라고 설명했습니까?”
나는 대답했다.
“사장님은… 사업을 키우려던 겁니다.”
“방식이 거칠긴 했지만, 처음부터 속이려던 건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알았다.
내가 또 그러고 있다는 걸.
검사가 서류를 내려놨다.
소리가 났다.
이 방에 들어와서 처음 듣는 종류의 소리였다.
“은부장 씨.”
목소리가 달라져 있었다.
“지금 서진우 씨 변호하러 오셨습니까?”
“아닙니다.”
“본인이 지금 무슨 처지인지 알고 계세요?”
“…”
“있는 그대로 말씀하세요.”
“평가하지 마시고.”
“본 것.”
“들은 것.”
“한 것.”
“그것만.”
나는 고개를 숙였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 사람 때문에 여기 앉아 있는데,
그 사람 이야기가 나오면
나는 아직도 문장을 골라 쓰고 있었다.
미안하다는 말을 두 번 들었다고,
빚이 생기는 건 아닌데.
나는 다시 말했다.
이번에는 평가 없이.
본 것.
들은 것.
한 것.
검사가 조사관에게 눈짓을 했다.
조사관이 다른 기록철을 가져왔다.
서진우 조서였다.
검사는 내 진술과 서진우 진술을
그 자리에서 맞춰 봤다.
날짜.
계약.
돈의 흐름.
페이지가 넘어갈 때마다
나는 시험지 채점을 기다리는 기분이 됐다.
“대체로 일치하네요.”
검사가 말했다.
나는 숨을 내쉬었다.
너무 빨랐다.
“근데 하나가 안 맞아요.”
검사가 기록철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정진동 씨 진술입니다.”
검사가 읽었다.
“정진동 씨는,”
“영업법인의 존재를 몰랐다고 진술했습니다.”
나는 검사를 봤다.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몰랐다고요?”
“네.”
“본인은 그런 법인이 있는 줄도 몰랐고,”
“알았다면 계약하지 않았을 거라고.”
나는 웃을 뻔했다.
웃으면 안 되는 방이었다.
그 사람이 서명한 계약서가
내 가방 안에 있었다.
그 사람 창고 주소가 적힌 계약서가.
“그거 거짓말입니다.”
내가 말했다.
검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대하던 대답이라는 듯이.
“그럼 입증하셔야죠.”
“계약서는 제출하셨고,”
“서명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어요.”
“정진동 씨가 법인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는 자료.”
“정황 말고 문서.”
“찾아서 제출하세요.”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거짓말은 저쪽이 했는데,
숙제는 내가 받았다.
조사가 끝났다.
네 시간이 지나 있었다.
조서를 읽었다.
문답으로 정리된 내 하루였다.
간인을 하고,
서명을 했다.
내 이름을 쓰는데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가셔도 됩니다.”
문 앞에서 검사가 덧붙였다.
“자료, 기다리겠습니다.”
밖으로 나왔다.
해가 아직 있었다.
건물 안이 너무 차가워서,
여름 공기가 처음으로 반가웠다.
형이 커피를 두 잔 샀다.
“어땠어?”
“이상했어요.”
“뭐가.”
“검사가 물어봤어요. 왜 고소당했을까요, 라고.”
형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한참 있다가 말했다.
“정진동, 알카켐이랑도 소송 중이야.”
“알아요.”
“그 재판에서 필요한 게 뭐겠어.”
나는 형을 봤다.
“자기가 속았다는 그림.”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진우한테 속고, 너한테 속고.”
“그래야 자기가 피해자가 되니까.”
“몰랐다고 해야,”
형이 컵을 내려다봤다.
“속은 게 되는 거야.”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못 했다.
몇 년을 싸웠다.
경찰서에 앉았고,
준비서면에 서명했고,
무혐의를 받았고,
승소를 했다.
내 싸움인 줄 알았다.
아니었다.
나는 남의 재판에 제출된 증거였다.
내 몇 년이,
누군가의 소송 서류에 붙은
첨부파일이었다.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조사 전에 꺼 두었었다.
전원을 켰다.
부재중 전화 3통.
아내였다.
문자가 한 통 와 있었다.
[여보, 집에 등기 왔는데]
[검찰청이라고 적혀 있어]
[당신 앞으로 온 거던데, 이게 뭐야?]
나는 화면을 오래 내려다봤다.
몇 년을 혼자 들고 왔다.
우편함에서,
계단 입구에서,
재킷 안주머니에서.
끝까지 혼자 들고 갈 수 있을 줄 알았다.
등기는 집으로 간다.
그걸 몰랐다.
통화 버튼을 눌렀다.
신호가 갔다.
한 번.
두 번.
아내가 받았다.
“여보?”
나는 입을 열었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