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ngnam Republic — AURANIM Original Series

EPISODE 003

오전 9시

Nine A.M.

오전 8시 47분.

광화문으로 들어서는 차들이 평소보다 많았다.

아니,

정확히는 평소와 똑같았다.

출근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커피를 들고뛰었고,

택시는 경적을 울렸고,

신호등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초록불과 빨간불을 반복했다.

세상은 변한 것 같지 않았다.

라디오에서는 같은 뉴스만 흘러나왔다.

“잠시 후 오전 9시, 국가행정 AI의 첫 공식 브리핑이 시작됩니다.”

나는 채널을 껐다.

발표보다 중요한 건 오늘 고객 미팅이었다.

이번 계약을 놓치면 올해 성과급은 끝이었다.

지금 내게 국가는 멀고,

실적은 가까웠다.

회사 로비는 평소보다 조금 시끄러웠다.

직원 몇 명이 TV 앞에 서 있었다.

뉴스 채널은 모두 같은 화면을 내보내고 있었다.

정부청사 브리핑룸.

사회자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잠시 후 국가행정 AI의 공식 발표가 시작됩니다.”

“김 과장.”

민석이 손을 흔들었다.

“안 보세요?”

“회의 준비해야지.”

“그래도 역사적인 순간이라는데요.”

나는 웃었다.

“역사는 늘 지나고 나서 역사야.”

민석도 따라 웃었다.

오전 8시 59분.

회의실 TV가 켜졌다.

팀장은 노트북을 덮으며 말했다.

“5분만 봅시다.”

직원 스무 명이 말없이 화면을 바라봤다.

카메라가 연단을 비췄다.

이상했다.

연단에는 사람이 없었다.

대신 검은 화면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누군가 중얼거렸다.

“대통령은?”

“AI가 직접 하나 보네.”

작은 웃음이 퍼졌다.

그 순간,

화면에 파란빛이 켜졌다.

잠시 후,

낮고 차분한 목소리가 회의실을 채웠다.

“안녕하십니까.”

웃음이 멈췄다.

“저는 대한민국 국가행정 AI.”

“대한입니다.”

목소리에는 감정이 없었다.

화를 내지도,

웃지도 않았다.

그래서 더 이상했다.

“대한민국은 지난 20년 동안 생산성은 정체되었고,

행정 비용은 지속적으로 증가했습니다.”

화면에는 숫자가 나타났다.

국가 부채.

출산율.

고령화.

생산성.

회의실은 조용했다.

누군가는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누군가는 커피잔을 들고 있던 손을 멈췄다.

AI는 계속 말했다.

“현재의 행정체계는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국민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행정체계를 재설계합니다.”

나는 팔짱을 꼈다.

결국 행정구역 개편 이야기겠지.

그 정도라면 뉴스거리일 뿐이었다.

화면이 바뀌었다.

대한민국 지도가 나타났다.

익숙한 시·도 경계가 하나씩 사라졌다.

서울.

경기.

인천.

충청.

전부 흐려졌다.

회의실 안에서 누군가 작게 말했다.

“진짜네…”

AI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아주 담담하게 말했다.

“지금부터 새로운 행정구역을 발표합니다.”

부산항자유구.

판교기술특구.

충청에너지권역.

낯선 이름들이 하나씩 화면에 떠올랐다.

사람들은 신기하다는 듯 바라봤다.

누군가는 사진을 찍었다.

누군가는 피식 웃었다.

“이름 참 잘 지었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다,

서울 지도가 화면을 가득 채웠다.

한강이 선명하게 나타났다.

그리고 강남이 천천히 붉은색으로 표시됐다.

회의실 안이 조용해졌다.

AI가 말했다.

“새로운 행정구역.”

“강남공화국.”

누군가 웃음을 터뜨렸다.

“강남은 역시 다르네.”

몇몇 직원들이 따라 웃었다.

나도 웃었다.

그때까지는.

AI는 다시 말을 이었다.

“강남공화국은 독립 행정권과 경제 운영권을 부여받습니다.”

웃음이 조금씩 사라졌다.

“강남공화국 시민은 별도의 행정 시스템을 적용받습니다.”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별도 시스템?’

무슨 뜻이지.

AI는 여전히 같은 속도로 말했다.

“세부 운영 기준은 오늘부터 순차적으로 적용됩니다.”

회의실 뒤에서 누군가 말했다.

“설마 진짜 하겠어.”

다른 사람이 대답했다.

“그냥 행정구역 이름 바꾸는 거겠지.”

팀장이 리모컨을 들었다.

“됐습니다.”

TV가 꺼졌다.

회의실 조명이 다시 켜졌다.

“이제 회의 시작하죠.”

사람들은 노트북을 열었다.

누군가는 발표 이야기를 계속했고,

누군가는 고객 메일을 확인했다.

나도 노트북을 켰다.

모니터에는 아까부터 열어 둔 견적서가 그대로 떠 있었다.

나는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그 순간,

회사 메신저 알림이 하나 떴다.

[인사팀 공지]

금일 중 전 직원 거주지 확인 절차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나는 짧게 웃었다.

“별 걸 다 확인하네.”

그리고 다시 견적서를 열었다.

그때는 정말,

그 공지가 내 인생을 바꿀 첫 번째 문장이라는 걸 몰랐다.

AURANIM 뉴스레터

새 글이 발행되면 이메일로 보내드립니다. 스팸은 없습니다 — 언제든 구독 취소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