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4학년 2학기에 취직을 했다.
어려운 취업 관문을 뚫었다. 회사 이름은 현대해운.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그 현대를 떠올린다. 사무실 위치도 계동 현대사옥이었다. 그러니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은 내가 현대에 다니는 줄 알고 잘됐다고 했다.
현대그룹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회사였다.
나도 굳이 정정하지 않았다. 정정하려면 설명이 길어지고, 설명이 길어지면 축하가 애매해지니까. 스물몇 살의 나는 그 애매함을 견딜 만큼 단단하지 않았다.
일은 해외이사 서비스였고, 나는 영업팀이었다. 팀 분위기가 독특했다. 옷이 뭔지, 넥타이는 어느 브랜드인지, 차는 뭘 타는지. 그런 것에 팀 전체가 관심이 있었다. 나도 금방 젖어들었다. 셔츠를 맞추러 다녔다. 차려입으려고 애를 썼다.
지금 생각하면 이상한 열심이었다. 그 현대가 아닌데, 뭔가 다른 걸로 감추려는 듯한. 이름이 채워주지 못하는 것을 넥타이가 채워줄 리 없는데, 그때는 다들 그렇게 했고 나도 그렇게 했다.
6개월 만에 그만뒀다.
대단한 사건이 있었던 건 아니다. 다만 매일 아침 계동으로 출근하면서, 내가 어디에 다니는 사람인지 나부터 헷갈리기 시작했다. 남들이 아는 회사와 내가 다니는 회사가 달랐다. 그 간격을 셔츠로 메우는 생활은 오래 할 게 못 됐다.
첫 직장이 가르쳐 준 건 일이 아니었다. 이름과 실체는 다르다는 것. 그리고 회사의 이름이 나를 설명해 주지는 않는다는 것. 그걸 몸으로 배우는 데 6개월이 들었다.
여담 하나. 세월이 한참 지나 주식이라는 걸 시작했을 때, 내 인생 최대 금액이 들어간 종목은 하필 현대바이오였다. 물론 현대그룹과 아무 관련이 없는 회사다.
첫 직장은 현대가 아닌 현대해운. 첫 몰빵은 현대가 아닌 현대바이오. 나는 평생 그 현대와는 인연이 없고, 그 현대가 아닌 현대와만 인연이 깊다. 이쯤 되면 이름과 실체가 다른 것들이 나를 알아보고 찾아오는 게 아닌가 싶다. 그 주식이 어떻게 됐는지는, 마음의 준비가 되면 다른 글에서 고백하겠다.
두 번째 직장은 하루 만에 그만뒀다.
정확히는 첫 출근 날 밤에 탈출했다. 그 이야기는 다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