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빚을 무서워했다.

신용카드를 평생 쓰지 않으셨다. 핸드폰도 돈 아낀다고 평생 없으셨다. 대출을 받으면 큰일 나는 줄 알고 사신 분이다. 나도 비슷했다. 취업 준비할 때 용돈이 없어서 신용대출을 받으러 은행에 간 적이 있다. 창구에서 신용조회를 하면 신용등급이 떨어질 수 있다고 했다. 그 말에 쫄아서 그냥 나왔다. 등급이 떨어지는 게 무서웠다. 빌리지도 않았는데.

그런 내가 처음 신용대출을 받은 건 코로나 직전이었다.

군대 후임이 연락이 왔다. 필리핀에서 화장품 사업을 하는데 너무 잘된다고, 투자하면 배당금을 주겠다고 했다. 평소에 부수입이 있으면 좋겠다고 늘 고민만 하고 실천은 못 하던 나였다. 월급을 받으면 대출 이자를 내고 나면 수중에 남는 게 없었다. 그런데 깔고 앉은 집값은 올라 있었다. 객기가 생겼다. 신용대출 3천만 원을 받아 2천5백을 투자하고, 5백은 이자 낼 용도로 뒀다. 후임은 각서도 써 줬다. 나중에 그놈이 그러더라. 돈이 오가야 신뢰가 쌓이는 거라고. 사업하는 놈이라 그런지 그런 것 같기도 했다. 1년 안에 원금에 연 4.5% 이자를 쳐서 준다고 했고, 매달 입금이 들어왔고, 결국 다 갚았다. 또 넣을 거냐고 묻길래 됐다고 했다.

여기까지는 괜찮은 이야기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돌아온 2천5백은 신용대출을 갚아야 할 돈이었다. 그런데 이건 아내가 모르는 목돈이었다. 굴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때마침 코로나였다. 치료제, 백신, 진단키트. 신풍제약, 씨젠, 그리고 난생처음 듣는 회사들이 제약이나 바이오만 이름에 붙이면 두세 배, 열 배씩 갔다. 정부가 대북 사업을 발표하니 철도 관련주가 난리였고, 미래는 재생에너지라니 풍력과 태양광이 난리였고, 원격진료에 원격근무까지 활황이라 했다.

창동 살다 잠실에 오니, 테니스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다 투자 이야기를 했다. 돈 버는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했다. 이 동네 사람들은 돈 이야기에 자신이 있구나. 나도 해보자.

그날의 상한가 종목을 찾아 들어갔다. 반토막이 났다. 어떤 날은 남들이 모르는 종목에 돈을 박고 기다리면 좋은 일이 있을 거라고, 주식은 기다림이라고 해서 아무도 모르는 종목에 들어갔다. 정말 아무도 몰라서 거래가 없었다. 주가는 2천 원, 3천 원. 혼자 사고 혼자 팔며 내가 이 종목의 세력이다, 하고 놀다가 하한가를 맞고 나왔다. 팔아지긴 하더라.

그러다 현대바이오라는, 현대그룹과 아무 관계 없는 회사가 코로나 치료제를 개발 중이라는 뉴스를 봤다. 이미 1만 원에서 3만 원까지 올라 있었다. 그런데 댓글에 누가 그랬다. 신풍제약은 몇천 원에서 30만 원도 갔는데 너라고 못할쏘냐. 3만 원대에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하한가였다. 에라 모르겠다, 집값 올랐는데, 하고 신용을 질렀다. 한 달이 지나도 오르지 않았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것만 쳐다봤다.

하필 그 무렵 직장도 흔들리고 있었다. 다니던 외국계 회사에서, 한국 사장이 투자를 받아 독립한다며 같이 가자고 해서 나왔는데, 나와 보니 그 투자라는 게 부동산 PF였다. 대표라는 사람은 일은 모르고 매각 이야기만 했다. 그래서 더 매달렸는지도 모른다. 주식으로 목돈을 만들어서, 여기를 나가서, 다른 직장을 찾자.

그런데 현대바이오가 상한가를 치기 시작했다. 상한가, 또 상한가. 6만 원을 넘겼다. 은행 앱에서 9% 이자로 1천을 더 받아 물을 탄 게 1억이 되어 있었다. 아, 돈은 이렇게 버는 거구나. 포르쉐 매장에 가서 파나메라를 계약했다. 계약금 300을 냈다.

바로 떨어졌다. 계약은 취소했다.

그렇게 3년을 들고 있었다. 중간에 4만 원까지 와서 탈출할 수 있는 순간이 있었다. 헛된 망상으로 탈출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강남으로 이사를 가겠다며 주식이 얼마나 있느냐고 물었다. 3분의 1이 되어 있었다. 현대바이오를 빼서 스테이블코인이 어쩌고 하는 다날에 들어갔다. 벌긴 했다. 미미했다. 이사까지 남은 시간 6개월. 마지막 베팅이라 생각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게 헬릭스미스였다. 한때 코스닥의 제왕, 지금은 거의 잡주. 소수 계좌에 물량이 집중돼 있다고 했다. 이제 더 떨어지지 않겠지. 들어갔다. 한 달 만에 80% 수익이 났다.

그 자리에서 팔았으면 신용대출도, 현대바이오 원금도 회수였다. 그런데 정부가 증시를 부양한다고 했다. 더 있자고 했다. 그날부터 바이오는 빠지고 반도체가 날아갔다. 얼마 전 아들 친구 아빠가, 하이닉스 다닌다며 주식을 사라고 했을 때 무시한 내가 떠올랐다. 헬릭스미스는 5% 수익으로 나왔다. 반도체가 많이 올랐으니 이제 바이오다, 하고 신규 상장한 제약주에 들어갔다. 반토막. 반도체만 또 올랐다.

결국 손해만 보고 아내에게 머리 숙여 사죄했다. 적금과 연금을 깨서 겨우 부동산 복비를 마련했다. 주택담보대출을 받으려면 신용대출이 없어야 한다고 해서 다 갚고, 이사 잔금을 치렀다. 그리고 이사가 끝나자 다시 신용대출을 받아 미국 주식과 비트코인에 넣었다. 한국 반도체만 올랐다.

지금 계좌에는 3분의 1 토막이 난 바이오 주식이 하나 있다.

돌아보면 패턴은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 나는 언제나 이야기가 이미 다 오른 다음에 들어갔고, 주가가 아니라 이사 날짜가 나를 팔게 했다. 하이닉스 다니는 사람이 눈앞에서 하이닉스를 사라고 할 때는 안 사고, 얼굴도 모르는 댓글이 너라고 못할쏘냐 할 때는 샀다. 나는 직업상 화물이 실제로 움직이는 걸 보는 사람이다. 그런데 계좌에서는 한 번도 실물을 산 적이 없다. 늘 이야기를 샀다. 이야기는 내가 도착하면 끝나 있었다.

아버지는 빚이 무서워 핸드폰도 없이 사셨고, 평생 일해서 집 한 채를 남기셨다. 나는 빚으로 이야기를 샀다. 어느 쪽이 부자가 됐는지는 이미 앞의 글에 썼다. 벌려고 산 적 없는 집은 벌었고, 벌려고 산 모든 것은 도망갔다.

그 계좌는 아직 열어 본다. 다만 이제는, 적어도 내가 뭘 사고 있는지는 안다. 이야기인지, 실물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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