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의 주가 ① — 여의도, 시황을 먹는 동네

「점심의 주가」는 「맛집의 경제학」의 코너 속 코너다. 본 연재가 아파트의 지도 — 밤의 부동산 — 와 맛집의 지도를 겹쳐 읽는다면, 이 코너는 그 사이에 놓인 나머지 절반, 낮의 부동산을 읽는다. 기업의 돈은 어떤 배관을 타고 회사 앞 식탁까지 오는가. 그 배관은 어디서 뚫려 있고(여의도), 어디서 잠기고(판교), 어디서 새는가(마곡).

시황판으로서의 식당가

여의도의 점심시간에는 이상한 규칙이 하나 있다. 그날 식당가의 표정이 그날 코스피를 닮는다는 것이다.

이 글을 준비하던 7월 초, 코스피는 8000선을 넘나들었고, 투자자예탁금은 137조 원으로 사상 최고, 신용융자 잔고도 역대 최고다. 그리고 그 숫자들은 몇 주의 시차를 두고 여의도의 테이블 위에 도착했다. 증권가 성과급이 살아났다 — 어떤 증권사는 4년 만에 성과급을 부활시켰고, 어떤 곳은 최대 2500%까지 거론된다. 여의도 식당가에서는 회식 예약이 눈에 띄게 늘었고 법인카드 결제가 증가했다. 불황이면 정확히 반대가 된다. 예약이 끊기고, 법카 한도가 줄고, 오마카세가 국밥이 된다.

이 동네 식당의 진짜 고객은 직장인이 아니다. 시황이다.

점심값의 서열

직장인 점심값 지도를 펴 보면 이 코너의 명제가 그대로 보인다. 서울에서 점심이 가장 비싼 곳은 삼성동 1만 5천 원. 강남 1만 4천, 여의도·서초 1만 3천, 마곡·판교 1만 2천, 송파·종로 1만 1천 원이 뒤를 잇는다.

직장인 점심값 서열 — 삼성동 1만5천 원부터 송파·종로 1만1천 원까지

이 순위표에서 눈여겨볼 건 값이 아니라 명단이다. 삼성동, 여의도, 마곡, 판교 — 전부 사람이 사는 동네가 아니라 회사가 사는 동네다. 점심값의 서열은 아파트값의 서열이 아니라 본사의 서열이고, 더 정확히는 법인카드의 서열이다. 앞선 연재에서 별은 인구를 따라가지 않는다고 썼는데, 점심값도 마찬가지다. 점심값은 상주인구가 아니라 상주자본을 따라간다.

그래서 이 코너의 명제는 이렇다. 상권을 만드는 건 주민이 아니라 법인카드다. 그리고 법인카드의 한도는 그 회사의 실적이, 실적의 기대는 주가가 정한다. 여의도 백반집 사장님은 모르는 사이에 코스피와 연동된 사업을 하고 있는 셈이다.

축포와 초상집

그런데 이 이야기에는 뒷면이 있다.

같은 시기의 다른 숫자들을 보자. 소비자심리지수는 한 달 새 7.8포인트 떨어져 99.2. 소상공인 체감 경기는 57.0. 증시에 137조가 앉아 있는 동안 골목의 백반집은 초상집이라는 보도가 나온다. 증시가 뜨거울수록 시중의 돈이 주식 계좌로 빨려 들어가고, 골목의 소비는 오히려 마른다.

즉 ‘주가가 점심을 사 주는’ 동네는 대한민국에 몇 블록 없다. 여의도, 삼성동, 판교 — 성과급과 법인카드가 있는 블록들뿐이다. 같은 코스피 8000이 여의도에서는 회식 예약으로, 지방 상가에서는 빈 테이블로 번역된다. 앞선 연재의 언어로 말하면, 주가와 점심 사이의 거리가 동네마다 다른 것이다. 여의도에서 그 거리는 몇 주짜리 시차고, 골목에서는 건널 수 없는 강이다.

성과급의 물류

물류인의 습관으로, 그 성과급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동선을 따라가 본다. 첫 정거장은 오마카세와 위스키바 — 여의도와 강남의 하이엔드 외식이다. 다음 정거장은 백화점 — 여의도 더현대서울은 연매출 1조를 바라보는 점포가 됐고, 반도체 도시 동탄의 백화점은 명품 매출이 40% 가까이 뛰었다. 종착지는 결국 부동산 계좌다.

낙수는 흐른다. 다만 넓은 들판으로 스미는 게 아니라, 몇 개의 좁은 파이프로만 흐른다. 그 파이프가 지나가는 블록의 점심값이 1만 5천 원이 되고, 지나가지 않는 골목의 점심 테이블이 빈다. 점심의 주가라는 이 코너가 앞으로 추적할 것이 바로 그 파이프의 노선도다.

다음 종목

여의도는 여러 회사의 시황을 먹는 동네다. 그럼 한 회사의 주가를 먹는 동네는 어떻게 될까. 회사가 곧 동네이고 동네가 곧 회사인 곳 — 마곡의 점심은 LG의 실적을, 판교의 점심은 플랫폼의 주가를 먹는다. 특히 판교는 이 코너의 자연 실험장이다. 플랫폼 주가가 꺾였던 몇 해 동안 그 동네 점심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데이터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다음 종목은 판교다.

추기(7월 중순). 이 글이 실리는 사이 시황이 급변했다. 코스피는 6월 19일 9,385의 고점을 찍은 뒤 한 달 만에 6,800대까지 밀렸고, 하루 -9%와 +6%가 번갈아 나오는 폭풍장이 됐다. 한국은행은 7월 16일 3년 6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올렸다(2.75%). 성과급 잔치 기사가 몇 주 만에 옛날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것 — 그것이야말로 이 코너의 전제다. 주가가 점심을 사 주는 동네라면, 주가가 꺾일 때 점심이 먼저 안다. 여의도의 점심 줄이 이번 조정을 어떻게 통과하는지, 이 코너가 계속 지켜본다.


참고 자료
이코노미스트 「축포 터지는 증권시장, 골목은 초상집 — K자형 성장의 그림자」(예탁금 137조·신용융자 36조·소비자심리 99.2·소상공인 체감 57.0) / 서울경제 「증시 불장에 증권가 성과급 잔치」 / 한경비즈니스 직장인 점심값 지역 비교(삼성동 1.5만~종로 1.1만) / 현대백화점 더현대서울 매출 보도. 수치는 보도 시점 기준이며, 이 글은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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