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의 주가」는 「맛집의 경제학」의 코너 속 코너다. 본 연재가 아파트의 지도 — 밤의 부동산 — 와 맛집의 지도를 겹쳐 읽는다면, 이 코너는 그 사이에 놓인 나머지 절반, 낮의 부동산을 읽는다. 기업의 돈은 어떤 배관을 타고 회사 앞 식탁까지 오는가. 그 배관은 어디서 뚫려 있고(여의도), 어디서 잠기고(판교), 어디서 새는가(마곡).
고점의 적막
2021년 여름, 카카오와 네이버의 주가는 사상 최고였다 — 카카오 17만 원, 네이버 46만 원(공개 시세 기준). 시가총액이 국내 3~4위를 다투고, 개발자 연봉이 뉴스가 되고, ‘판교 신화’라는 말이 진지하게 쓰이던 계절이다.
이 코너의 가설대로라면 — 주가가 점심을 사 준다면 — 그해 판교의 골목은 서울에서 가장 뜨거웠어야 한다. 실제는 반대였다. 당시 현장 보도가 전하는 판교의 풍경은 이렇다. “판교는 적막이 감돈다. 출근하는 직원들, 점심 식사를 위해 나오는 직원들 모두 찾아보기 어렵다.” 두 회사가 2년째 전면 재택 중이었기 때문이다. 사무실 공실률 0.1%의 동네 — 빈 방은 하나도 없는데, 거리는 비어 있었다.
주가가 최고점일 때, 골목은 바닥이었다. 여의도에서 세운 명제가 판교에서 정면으로 깨진 것이다. 이번 화는 그 파열음을 추적한다. 왜 판교의 점심은 주가를 따라가지 않는가.
지도부터 정확히
먼저 이 동네의 지도를 정확히 그려 두자. 흔히 ‘판교’로 묶어 부르지만 네이버 본사(1784)는 분당 정자동에, 카카오(판교아지트)는 판교 테크노밸리에 있다.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고, 상권도 다르다. 이 글이 다루는 것은 그 둘을 포함한 분당–판교 테크 벨트 전체다 — 몇 개 회사의 사원증이 동네의 점심 인구를 결정하는, 한국에서 가장 순도 높은 기업 상권.
순도가 높다는 건 실험실로 좋다는 뜻이다. 여의도는 수백 개 금융사의 시황을 먹지만, 이 벨트의 점심은 사실상 몇 장의 실적표에 달려 있다. 변수가 적으니, 주가와 점심의 관계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가 여기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차단 ① — 몸이 안 오면 카드도 안 온다
2021년의 적막이 알려 준 첫 번째 사실. 법인카드는 시황을 타고 오는 게 아니라 몸을 타고 온다. 주가가 아무리 올라도 그 주가의 주인공들이 집에서 일하면, 골목의 매출은 0이다. 여의도의 돈이 시황판에서 내려온다면, 판교의 돈은 셔틀버스에서 내린다.
그래서 이 동네 점심의 제1 변수는 주가가 아니라 출근율이다. 이 명제는 숫자로 검증된다. 2022년 6월부터 판교의 회사들이 재택을 접기 시작했다 — 엔씨소프트와 넥슨이 먼저 전면 출근으로 돌아섰고, 카카오도 이듬해 3월 출근 기본을 예고했다. 그 결과가 그해 연말 데이터에 찍혀 있다. 판교역 하루 이용객은 재택 확산기 2만 명대에서 4만 3천 명으로 돌아왔고(코로나 이전 수준), 판교 삼평동 요식업체 200곳의 12월 마지막 주 매출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59% 뛰었다.
여기서 시점을 보라. 골목 매출이 59% 뛴 2022년 12월, 카카오와 네이버의 주가는 고점 대비 70% 안팎 빠진 바닥권이었다. 주가가 최고였던 2021년 여름에 골목은 적막했고, 주가가 바닥이던 2022년 겨울에 골목은 되살아났다. 주가와 점심의 상관관계가 약한 정도가 아니라, 이 2년 동안은 아예 거꾸로 움직였다. 골목을 움직인 변수는 차트가 아니라 개찰구였다.
차단 ② — 몸이 와도 담장이 막는다
출근이 재개되면 이제 주가의 온기가 골목에 닿을까. 두 번째 차단벽이 있다. 담장이다.
잘나가는 테크 회사일수록 구내식당을 키운다. 규모를 보자 — 엔씨소프트 사옥의 구내식당은 756평, 754석이다. 출근 재개 직후 이 식당은 배식 대기만 15~20분이 걸릴 만큼 찼다. 754개의 점심이 매일 담장 안에서 소화된다는 뜻이다. 사옥 안에 카페와 마사지실과 사내병원과 어린이집을 넣는다. 네이버와 카카오의 신사옥이 정확히 그 설계다. 물류의 눈으로 보면 이것은 공급망의 내재화다 — 제조업체가 부품을 내재화하듯, 대형 사옥은 점심을 내재화했다. 회사가 잘될수록 복지가 좋아지고, 복지가 좋아질수록 직원이 담장 밖으로 나올 이유는 줄어든다. 호황의 낙수는 골목으로 흐르지 않고 구내식당 메뉴판 위에 고인다.
담장 밖으로 나오는 점심조차 균질하지 않다. 네이버 계열사 노조들이 공개한 바에 따르면 일부 계열사의 초봉은 본사의 절반 수준이고, 밥값 지원에서도 격차가 난다. 같은 그룹의 사원증을 걸고 같은 식당가를 걷는데 누구의 점심에는 회사 돈이 얹히고 누구의 점심은 온전히 제 지갑이다. 점심의 주가는 회사 단위가 아니라 사원증 단위로 매겨진다.
골목의 포지션
이제 두 차단벽을 합치면 판교 골목의 진짜 포지션이 드러난다.
주가가 오를 때 — 온기는 담장 안에서 소화된다. 구내식당이 좋아지고, 사옥이 넓어지고, 골목의 몫은 크지 않다. 상방이 막혀 있다.
주가가 내릴 때 — 한파는 담장을 넘어 골목부터 때린다. 감원은 점심 인구 자체를 줄이고, 긴축은 회식과 법인카드부터 자른다. 재택이라는 옵션은 언제든 골목의 매출을 0으로 되돌릴 수 있다. 하방은 전부 열려 있다.
상방은 막히고 하방은 열린 자리 — 금융의 언어로 말하면, 판교의 골목 식당은 테크 호황의 콜옵션을 산 게 아니라 테크 불황의 풋옵션을 판 포지션이다. 프리미엄(평시 점심 매출)을 받는 대신, 폭락이 오면 손실을 전부 떠안는다. 여의도 편에서 “상권을 만드는 건 법인카드”라고 썼다. 판교가 그 명제를 이렇게 고쳐 쓴다. 상권을 만드는 건 법인카드다 — 다만 테크의 카드는 좋은 날엔 담장 안에서 긁히고, 나쁜 날에만 골목에 청구서를 보낸다.
그래서 — 무엇을 보아야 하나
이 구조가 주는 실용적 결론은 두 개다.
이 벨트에서 장사를 하거나 하려는 사람에게. 볼 것은 주가 차트가 아니다. 재택·출근 정책, 구내식당의 규모, 그리고 채용 공고 수 — 이 세 개가 골목 매출의 선행지표다. 주가는 이 골목에 좋은 소식을 준 적이 없고, 나쁜 소식만 배달한다.
바깥의 독자에게. 판교 골목이 식었다는 뉴스는 주가가 꺾였다는 뜻이 아니다. 이미 감원과 긴축이 시작됐다는 뜻이다. 골목은 시황의 후행지표가 아니라 고용의 동행지표다. 여의도의 점심이 시황판이라면, 판교의 점심은 채용 공고판이다.
다음 종목
여의도는 시장 전체를 먹고, 판교는 담장이 주가와 점심 사이를 끊어 놓았다. 그럼 처음부터 한 회사뿐인 동네는 어떨까. 동네 이름 앞에 사실상 기업 이름이 붙는 곳 — 마곡의 점심은 LG의 실적표다.
다음 종목은 마곡이다. → 점심의 주가 ③ — 마곡, 한 줄기의 낙수와 너무 많은 컵
참고 자료
조선일보 「다시 출근길이 북적인다 — 활기 찾은 판교밸리」(2023.1.11: 판교역 이용객 2만 명대→4만 3천 명, 삼평동 요식업 200곳 12월 매출 +59%, 엔씨 구내식당 756평·754석·대기 15~20분, 2022.6 대면 전환) / 뉴데일리 「판교의 아킬레스건 — 회사 건물만 덩그러니, 사라진 네이버·카카오 직원들」(2022.1, 재택 2년차 판교 상권 적막) / 아시아경제 「테크기업들 재택 끝내고 몸집 줄이기 — 판교에 불어닥친 칼바람」(2022.12) / 이코노믹리뷰 「코로나 무풍지대 판교 — 오피스 공실률 0.1%」(2020.12, 도심 9.8%·강남 8.7% 대비) / 문화일보 「네카 빼곤 매각·감원 공포」(계열사 초봉·밥값 지원 격차, 신사옥 복지) / 한경비즈니스 직장인 점심값 지역 비교(판교 1.2만 원). 카카오·네이버 주가 고점(2021년 중반) 및 이후 하락은 공개 시세 기준. 수치는 보도 시점 기준이며, 이 글은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