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받았다 — 2화. 회사는 안 보는 것들

그냥 받았다 — AURANIM Original Series

CHAPTER 02

회사는 안 보는 것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회사명은 모두 가명이며, 일부 배경은 각색되었습니다.

<이 글에 등장하는 인물과 회사명은 모두 가명입니다.>

1. 알카켐에 입사하고 1년이 됐을 때였다. 본사 교육이 있었다. 미국 서부. 혼자 가는 첫 미국 출장이었다. 많이 설렜다. 미국에 대한 로망이 항상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막연하게 가보고 싶었던 나라였다. 이직할 때 알카켐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도 그거였다. 영어로 일하는 환경. 미국 출장. 그게 단순한 조건이 아니었다. 내가 원하던 삶의 방식이었다. 나는 교회를 다녔다. 근데 다니게 된 회사가 신앙심 깊은 오너 일가의 회사였다. 처음엔 그게 웃겼다. 교회 다니는 사람이 신앙심 깊은 오너 일가의 회사에 취직했다고 하면 다들 그런 거냐고 했다. 나도 잘 몰랐다. 그냥 글로벌 기업이었다. 한국에서 금요일 비행기로 출국했다. 일본 스톱오버. 샌프란시스코 경유. 총 20시간이 걸렸다. 교육은 월요일부터였다. 토요일 일요일은 자유시간이었다. 렌터카를 빌렸으니 돌아볼 생각이었다. 가족 선물도 사야 했다. 서부에 도착했다. 공항은 작았다. 인천공항과는 달랐다. 입국 수속이 빨리 끝났다. 자동문이 열리는 순간 달랐다. 하늘이 땅 위에 있었다. 서울은 하늘이 건물 사이에 있다. 서부는 달랐다. 사방이 트여 있었다. 어디를 봐도 막히는 게 없었다. 멀리 눈 덮인 산맥이 배경처럼 서 있었다. 사진에서 본 것과 실제는 달랐다. 그 크기가 실감이 안 났다. 렌터카를 빌렸다. 닛산 알티마였다. 출고된 지 얼마 안 된 차였다. 도로가 넓었다. 차가 없었다. 신호도 별로 없었다. 한참을 달려도 건물이 안 나왔다. 평야. 그리고 또 평야. 조용했다. 서울에서 오면 그 조용함이 낯설다. 뭔가 빠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소음이 없으니까. 사람이 없으니까. 창문을 내리면 바람 소리만 들렸다. 낯설었다. 시골 같기도 했다. 근데 사람들은 친절했다. 모르는 사람한테도 인사했다. 그게 또 낯설었다. 호텔은 외곽의 체인 호텔이었다. 도시 외곽이라 그런지 1박에 100불 정도였다. 비행기와 호텔은 법카로 했는데 렌터카는 법카로 못 해서 개인카드로 디파짓 했다가 나중에 법카로 변경했다. 짐을 풀고 나니 문자가 왔다. 렌터카 5일 치 결제 내역이었다. 짜증이 났다. 카드사에 전화해서 따졌다. 확인해 보겠다는 답변뿐이었다. 시간이 너무 늦었다. 샤워하고 잤다. 시차 때문에 잠이 자꾸 깼다. 폰을 봤다. 렌터카 결제가 취소됐는지 확인하려고. 뒤척이다 일어나자마자 폰을 봤다. 아직 취소가 안 됐다. 조식 가능 시간을 확인했다. 오전 7시부터. 지금 6시 30분이었다. 씻고 조식 먹으러 갔다.

2. 호텔 로비에 위치한 조식 식당이었다. 자리에 앉으니 동양인 여성이 영어로 인사했다. 연세가 있어 보였다. 60대 중반 정도. 나도 영어로 인사하고 메뉴를 주문했다. 아메리칸 브렉퍼스트. 계란은 어떻게 해주냐고 물어봤다. 서니사이드업으로 달라고 했다. 음식이 나왔다. 그 여성이 물었다. “한국 사람이에요?” 그렇다고 했다. 그녀가 서니사이드업 하나를 더 줬다. 웃으면서 말했다. 이 외진 곳까지 한국 사람이 잘 안 온다고. 매우 반갑다고. 호텔 머무는 동안 쓸 수 있는 식사 쿠폰을 넉넉하게 줬다. 여기 스테이크가 맛있으니 많이 먹으라고 했다. 조식에도 쿠폰 내면 스테이크로 업그레이드가 가능하다고 알려줬다. 호텔 머무는 동안 스테이크를 아침저녁으로 먹었다. 조식을 다 먹어갈 때쯤 그녀가 전화번호를 물었다. “내일 일요일인데 교회 같이 가실래요?” 잠깐 고민했다. 종교는 있었다. 교회를 다녔다. 근데 한인 교회인지 그 교단인지 알 수 없었다. 그냥 알겠다고 했다. 서로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카톡으로 연락했다. 이름이 떴다. 수잔이었다. 나중에 들었다. 수잔은 원래 한국 대구 출신이었다. 한국전쟁 이후 주한미군으로 파병 온 미국 남편을 한국에서 만났다. 그렇게 미국으로 오게 됐다. 조식을 먹고 렌터카로 드라이브를 나갔다. 도시 외곽 붉은 암반의 국립공원을 돌아봤다. 드넓은 붉은 암반 지대였다. 서울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차를 세우고 한참 서 있었다. 아무도 없었다. 바람 소리만 들렸다. 저녁에 호텔로 돌아와 수잔이 준 쿠폰으로 스테이크를 먹었다.

3. 다음 날 오전 8시였다. 호텔 앞에 미국식 픽업트럭이 섰다. 수잔이었다. 작은 체구였다. 근데 큰 픽업트럭을 거칠게 몰고 왔다. 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교회로 향했다. 자그마한 한인 교회였다. 인원은 대략 30명. 대부분이 한국인이었다. 백인, 흑인, 인디언 피부색도 보였다. 한인 목사님이 한국어로 설교했다. 미국 서부 외진 곳에서 한인 교회. 신앙심 깊은 오너 일가의 회사 출장 와서 한인 교회에 앉아 있었다. 색다른 경험이었다. 목사님 설교가 끝나고 처음 출석한 사람은 일어나서 인사하라고 했다. 영어로 할지 한국어로 할지 물었다. 영어가 가능하면 영어로 해달라고 했다. 사실 전날부터 준비해 뒀다. 본사 직원들 만나면 또 해야 했으니까. 예배가 끝나고 교회에서 식사를 했다. 한식이었다. 미국 온 지 얼마 안 됐는데 은근히 그리웠다. 밥을 다 먹고 나서 헌금을 내야 할 것 같았다. 몰래 20불을 헌금통에 넣고 나왔다. 수잔이 호텔까지 데려다줬다. 오후 2시였다. 내일부터 교육이면 선물 준비 시간이 없을 수도 있었다. 서둘러 쇼핑몰로 갔다. 막상 도착하니 달러로 돼 있어서 가격이 잘 와닿지 않았다. 아이 자동차 장난감. 짐승털 재질 백팩. 나침반 2개를 샀다.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여기에만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돌아오는 길이었다. 주유소 사거리였다. 한국에서처럼 차 없을 때 비보호 우회전을 했다. 그 순간. 쾅.

4. 정신이 없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인디언과 흑인 중간쯤 피부색의 중년 남성이 영업 차량 같은 트럭에서 내려서 나한테 뭐라 했다. 주유소 쪽으로 차를 대라고 제스처를 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차를 움직여봤다. 인생에서 처음 당해보는 교통사고였다. 그것도 미국에서. 다행히 차가 움직였다. 잠깐 안도했다. 그것도 잠시. 차에서 내리자마자 렌터카 상태를 확인했다. 차량 왼쪽 앞부분. 범퍼가 떨어져 덜렁거리고 있었다. 당황했다. 근데 그보다 먼저 든 생각이 있었다. 회사에 피해가 되는 상황인지. 출장 중이었다. 회사 비용으로 온 거였다. 일단 알려야 했다. 상대방이 영어로 뭐라고 하고 있었다. 하나도 못 알아들었다. 내가 잘못했다는 것 같았다. 아무 말하지 않았다. 일단 콜 폴리스라고만 했다. 그가 전화하기를 주저했다. 내가 했다. 아는 번호는 911 뿐이었다. 솔직히 내가 어디 있는지도 몰랐다. 카 액시던트 헬프 정도만 말한 것 같았다. 최식은 한 테 전화했다. 안 받는다. 메시지를 보냈다.

케일이 떠올랐다. 일요일이었다. 안식일이었다. 분명 가족과 교회에 있을 거였다. 연락하지 않았다. 결국 수잔한테 카톡 전화를 했다.

회사 사람이 아니라 호텔 조식당에서 만난 한국인 아주머니한테.

“헬로, 안녕하세요. 저인데요.. “나를 이분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순간 고민해서 한 말이다.

“제가 방금 교통사고가 나서요.” 수잔이 깜짝 놀랐다. 다친 데는 없냐고 물었다. 몸은 괜찮은데 상대방 운전자가 화를 많이 내고 있다고 했다. 위치를 알려달라고 했다. 보이는 곳을 대충 이야기했다. 주변 사진을 찍어서 보내달라고 했다. 얼마 후, 수잔이 현지인에게 부탁했다고 했다.

오늘 교회에서 만난 인디언 계열 남성이었다. 목사님 여동생의 남편이었다. 경찰에도 연락했다고 했다. 한참을 기다렸다. 2시간에서 3시간. 상대방 운전자와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 말 잘못했다가 책임이 나한테 올까 봐 조용히 있었다. 주유소로 차량 한 대가 들어왔다. 교회에서 만났던 그 친구였다. 차에서 내렸다. 나를 보더니 웃으면서 괜찮냐고 물었다. 오늘 처음 봤다. 그것도 잠깐이었다. 인사만 나눴던 사람이었다. 근데 건너 건너 부탁받아 도움을 주러 온 거였다. 나는 괜찮다는 말 대신 너무 감사하다고 했다. 순간 이 은혜는 꼭 갚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잠시 후 낯익은 픽업트럭이 주유소로 들어왔다. 수잔이었다. 쇼핑센터 가고 싶으면 자기한테 말하지 왜 혼자 운전했냐고 했다. 감동이면서 듣고 싶었던 잔소리였다. 엄마 생각이 나는 잔소리였다. 큰 픽업트럭에서 내려 나한테 왔다. 다치지 않았냐고 했다. 이상하게 뿌듯했다. 먼 타지 출장에서 교통사고가 났는데 나를 도우러 2명이 사고 현장에 왔다. 회사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늘 처음 만난 사람들이었다. 너무 감사했다. 30분 후 미국 경찰이 도착했다. 상대방 운전자, 목사님 처남, 경찰 세 명이 10분 정도 이야기했다. 경찰이 나한테 왔다. 병원 안 가도 되는지 물었다. 차는 렌터카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했다. 서류 하나를 건네주고 작성하라고 했다. 목사님 처남이 렌터카 회사에 전화했다. 보험이 돼 있으니 차량은 교체하면 된다고 했다.

최식은 한 테 문자가 왔다. 케일한테 연락했는데 가족과 있다고 한다고 했다. 결국 사고는 각자 보험 처리로 정리됐다. 저녁 시간이 됐다. 수잔이 자기 집에 가서 저녁 먹고 가라고 했다. 나는 부서진 차를 보면서 내일 본사 첫 출근이라 호텔에 가서 준비하겠다고 했다. 너무 감사하고 꼭 은혜 갚겠다고 했다. 수잔이 말했다. “너 운전 못하니까 운전하지 마.”

5. 알카켐 본사는 조용하고 단정했다. 회의는 기도로 시작했다. 모두 고개를 숙였다. 눈을 감았다. 나도 따라 했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었다. 근데 이 기도는 달랐다. 익숙한 것 같으면서 낯설었다. 테이블에 커피가 없었다. 콜라도 없었다. 물이 있었다. 그 교단는 카페인이 든 음료를 금한다. 커피. 홍차. 콜라. 다 안 마신다. 술은 당연히 없었다. 알카켐은 신앙심 깊은 오너 일가의 회사였다. 게이츠 회장부터 경영진 대부분이 그 교단 신자였다. 그 지역 인구 상당수가 신자였다. 젊을 때 2년간 선교를 다녀오는 문화였다. 가족을 최우선으로 여겼다. 손에는 교단의 반지를 끼고 있었다. 결혼한 남자들이 대부분 끼고 있었다. 가족 얘기를 자주 했다. 자녀가 많았다. 다섯. 여섯. 많으면 여덟이었다. 저녁 자리도 달랐다. 술이 없었다. 일찍 끝났다.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를 먹었다. 다들 물이나 주스를 마셨다. 일요일은 안식일이었다. 업무 연락이 없었다. 가게가 문을 닫았다. 도시가 조용해졌다. 이 사람들한테 회사는 가족 다음이었다. 일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게 솔직히 부러웠다. 교회 다니는 사람이 신앙심 깊은 오너 일가의 회사에 다니게 됐다. 뭔가 이상한 것 같으면서 이상하지 않았다. 신을 믿는다는 건 같았다. 근데 그 방식은 달랐다.

6. 다음 날 알카켐 본사에 출근했다. 부서진 닛산 알티마를 타고. 주차장에는 다양한 고급 차량이 있었다. 나는 범퍼 덜렁거리는 차를 세웠다. 케일이 웃으면서 반갑게 맞이했다. 본사를 소개해줬다. 각 사무실을 돌면서 낯익은 얼굴들과 인사했다. 그중 몇 명은 한국 센터 세팅에 참여해서 한 달 정도 한국에 머물렀었다. 그때 내가 차로 센터까지 라이딩해 줬었다. 반갑게 맞아줬다. 케일은 어제 사고에 대해 묻지 않았다. 한마디도. 아는 척도 하지 않았다. 웃으면서 본사 안내를 했다. 그게 다였다. 속으로 생각했다. 이 사람은 모르나. 아니면 아는데 모른 척인가. 그중 오퍼레이션 VP 제리코가 나를 보더니 말했다. “야 어제 사고 났었다며. 병원 안 갔네? 그 정도는 괜찮지 별일 아니지.” 그리고 이어서 물었다. “차는 보험 들었지?” 그들은 다 알고 있었다. 케일도 알고 있었다는 얘기였다. 모른 척한 거였다. 이 사고로 회사 비용이 드는지 여부가 그들에게는 중요해 보였다. 사람이 다쳤는지가 아니라. 비용이 얼마냐. 그게 전부였다. 사고 났을 때 제일 먼저 든 생각이 회사에 피해가 되는지 여부였다. 그게 나였다. 근데 회사는 비용이 드는지 여부만 봤다. 그게 회사였다. 그렇게 본사 첫날 교육이 끝났다. 제리코 외에 어느 누구도 어제 내 사고를 묻는 이가 없었다. 교육을 마치고 부서진 알티마를 몰고 렌터카 회사로 갔다. 대충 상황을 설명했더니 차량 교환할 거냐고 물었다. 잠시 고민하다가 차량을 받겠다고 했다. 교환 차량은 도요타 캠리였다. 구식이었다. 오히려 새 차 냄새나던 알티마보다 마음이 편했다. 호텔로 돌아왔다. 수잔과 호텔 로비에서 마주쳤다. 괜찮냐고 물으면서 식사 쿠폰을 몇 장 더 챙겨줬다. 너무 고마웠다. 한국 카드사에서 렌터카 비용 취소됐다는 문자가 왔다. 법카로 처리된 거였다.

7. 교육이 끝나고 마지막 날이었다. 수잔이 집에 초대해서 식사하고 가라고 했다. 공항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운전하지 말라고 했다. 수잔 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한식이었다. 수잔이 직접 만들었다. 된장찌개. 김치. 잡채. 미국 서부 외곽 집에서 먹는 한식이었다. 맛있었다. 그냥 맛있었다. 근데 그 이상이었다. 사고 나고 혼자 처리하고 회사는 비용 걱정만 하고. 그 끝에 누군가 차린 밥상 앞에 앉아 있었다. 뭔가 고마웠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종류의. 헤어지면서 수잔이 말했다. “다음에 또 와요. 오면 연락해요.” 그 이후로 미국 출장마다 수잔한테 연락했다. 서진우 최식은 과 함께 출장을 갈 때도 그들은 먼저 귀국했다. 나는 남았다. 솔직히 샌프란시스코나 LA로 넘어가고 싶었다. 다른 도시도 보고 싶었다. 근데 수잔이 집에 초대해서 식사하고 가라고 했다. 고마운 분의 제안을 거절하는 건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남았다. 수잔이 필요하다는 한국 물건들을 챙겨 갔다. 수잔 동생이 메주를 배달해 달라고 해서 장류와 함께 챙겨 갔다. 수잔 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공항까지 수잔이 데려다줬다. 그냥 그런 관계가 됐다.

8. 서부에서의 밤은 길었다. 서울과 시차가 열여섯 시간이었다. 잠이 안 왔다. 창밖으로 평야가 보였다. 가로등이 드문드문 있었다. 그 너머는 어두웠다. 서울에서는 혼자 있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 회사. 센터. 고객사 미팅. 집에 오면 아이가 있었다. 와이프가 있었다. 조용할 틈이 없었다. 서부는 달랐다. 호텔 방. 혼자. 조용함. 잘하고 있는 건가. 답이 없는 질문이었다. 그냥 창밖을 봤다. 멀리 산맥 실루엣이 보였다. 이 회사는 숫자를 본다. 사고가 났을 때 제일 먼저 든 생각이 회사 피해 여부였다. 근데 회사는 비용이 얼마냐만 봤다. 서진우도 그걸 알고 있었을 거다. 번호판 팔고 지분 받고. 운송사 만들고 대표 자리 뺏기고. 케일한테 센터 내주고. 나갈 계획이 있었을 거다. 근데 계획보다 일찍 나가게 됐다. 내부 고발 때문에.

나는 그때 그걸 몰랐다.

창밖을 봤다. 산맥은 여전히 어두웠다.

탈출하고 싶었다. 근데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선택지는 이미 정해져 있는 것 같았다.

그냥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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