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받았다 — AURANIM Original Series
CHAPTER 05
형수님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회사명은 모두 가명이며, 일부 배경은 각색되었습니다.
<이 글에 나오는 인물과 회사명은 가명입니다>
내부고발자가 누구인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서진우도 모른다고 했다.
알카켐에서 내사가 시작된 뒤, 사람들은 각자 이름을 올려놓고 추측했다. 누가 메일을 보냈는지, 누가 자료를 넘겼는지, 누가 가장 먼저 알고 있었는지.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가장 많이 거론된 사람은 최식은 이었다.
알카켐에 있을 때 최식은 이는 자기편을 만들고 싶어 했다. 센터 운영 규모가 커지면서 현장을 맡길 사람이 필요했고, 전 직장 동료를 데려왔다.
도봉은 이었다.
도봉은이는 첫인상부터 거칠었다.
목소리가 컸고, 말보다 소리가 먼저 나갔다. 직원들과 자주 부딪혔다. 특수화물에 대한 이해도 부족했다.
모르는 걸 인정하기보다, 큰소리로 밀어붙이는 사람이었다.
현장 직원들은 싫어했다.
근데 서진우는 달랐다.
도봉 은은 센터 근처 기숙사에서 생활했다. 새벽에 나왔고, 밤늦게까지 남았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했다.
서진우는 그걸 봤다.
그리고 믿기 시작했다.
둘은 점점 가까워졌다.
어느 순간부터 도봉 은은 J&S 계획을 알고 있었다. 센터가 완공되면 어떻게 움직일지, 누가 들어올지, 누가 빠질지.
반대로 최식은 과는 멀어졌다.
그래서 말이 돌았다.
최식은 이 내부고발자 아니냐고.
서진우가 직접 물었다고 했다.
“내가 지분 1%에 2억 넣었는데 내가 왜 그래?”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럼 누구였을까.
나는 가끔 생각했다.
내부고발로 가장 이익을 보는 사람이 누구인지 보면 답이 나올 것 같았다.
근데 그때는 거기까지였다.
서진우가 알카켐을 나온 지 한 달쯤 됐을 때였다.
도봉은 이 사이언스켐에 합류했다.
현장 오퍼레이션 총괄이었다.
정진동은 사람들 앞에서 웃으며 말했다.
“도 사장님 오셨네.”
사장.
직함은 빨랐다.
서진우가 따로 내게 말했다.
“도봉은도 들어와.”
나는 잠깐 말이 없었다.
솔직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근데 내색하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그 말이면 충분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됐다.
이 회사에서 자리는 능력으로 채워지지 않았다.
필요한 사람으로 채워졌다.
도봉 은이는 현장을 맡으러 들어온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이 회사엔 현장 말고도 다른 자리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어느 날 밤이었다.
퇴근 준비를 하고 있는데 정진동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혼자가 아니었다.
옆에 여자가 한 명 있었다.
처음 봤을 때 화려하다는 느낌은 없었다.
짙은 색 정장에 로고 없는 가방, 장식 없는 시계. 머리는 단정하게 묶여 있었고, 화장도 거의 하지 않았다.
대신 이상하게 눈에 들어오는 사람이었다.
말없이 서 있어도 주변 공기가 바뀌는 종류의 사람이 있었다.
그 여자가 그랬다.
정진동은 평소보다 조용했다.
“형수님이야.”
그가 말했다.
그제야 알았다.
첫 저녁 자리에서 정진동이 돈 이야기 끝마다 꺼내던 사람이, 금융권 사람을 안다며 몇 번이나 이름 대신 호칭으로만 말하던 사람이, 바로 이 여자라는 걸.
나는 인사를 했다.
여자는 가볍게 고개만 끄덕였다.
정진동은 직접 커피를 타왔다.
평소 직원들한테 시키던 사람이었다.
도봉은도 급히 일어나 의자를 빼줬다. 서진우도 말수가 줄었다.
나는 그 장면이 낯설었다.
형수님은 자리에 앉지도 않고 사무실을 천천히 둘러봤다.
벽면. 책상. 서류철. 복사기.
그리고 말했다.
“생각보다 작네요.”
정진동은 웃었다.
“곧 옮길 겁니다.”
“자금은요?”
그녀가 물었다.
정진동 웃음이 잠깐 멈췄다.
“맞춰놓고 있습니다.”
“누가 맞춰주는데요?”
짧은 질문이었다.
정진동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때 처음 느꼈다.
이 사람은 결과보다 구조를 먼저 보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내 쪽을 봤다.
“이분은?”
“영업 총괄입니다.”
정진동이 빠르게 말했다.
나는 다시 인사했다.
그녀는 잠깐 나를 보더니 말했다.
“고생 많으시겠네요.”
말은 부드러웠다.
근데 위로처럼 들리진 않았다.
사람을 보는 말투가 아니라, 자리를 보는 말투였다.
그날 이후 조금씩 알게 됐다.
그 여자가 정진동 지분의 절반을 갖고 있다는 걸.
50%.
사람들은 형수님이라고 불렀지만, 친척은 아니었다.
정진동이 그렇게 부를 뿐이었다.
밖에서 이름이 나오지 않게 하려는 호칭이라는 말도 있었다.
국내 유명 IT 기업 사내이사.
유명 대학 교수.
언론 인터뷰도 하고, 강연도 다니는 사람이었다.
겉으로는 깨끗한 이력이었다.
근데 이 판에서는 이름을 드러내지 않았다.
등기에는 늦게 들어오고, 회의에는 거의 나타나지 않았고, 계약서에는 직접 서명하지 않았다.
대신 필요한 순간마다 사람을 연결했다.
은행 임원. 캐피털 심사역. 법무법인 파트너. 세무사. 감정평가사.
정진동은 앞에서 떠들었고, 그 여자는 뒤에서 길을 열었다.
PF가 승인될 때마다 정진동은 자기 실력처럼 말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형수님 전화 한 통이 먼저 들어갔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5억을 넣고 지분 50%를 가져갔다고 했다.
매각이 되면 수백억이 돌아오는 구조였다.
PF 빚은 정진동 이름으로 쌓였고, 형수님 이름은 어디에도 없었다.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망할 이유도 없었다.
위험은 앞에 선 사람이 지는 거였다.
나는 확인하지 않았다.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그날 사무실에서 본 태도만으로 충분했다.
나는 그날 처음 알았다.
정진동이 판을 흔드는 사람인 줄 알았다.
아니었다.
그는 앞에 서 있는 사람이었다.
진짜로 움직이는 사람은
뒤에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