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받았다 — 6화. 이게 그 답이었다

그냥 받았다 — AURANIM Original Series

CHAPTER 06

이게 그 답이었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회사명은 모두 가명이며, 일부 배경은 각색되었습니다.

<이 글에 나오는 인물과 회사명은 가명입니다>

레솔브는 처음부터 정상적인 회사가 아니었다.

정진동이 내게 말했다.

“은부장, 알카켐 고객사를 우리가 바로 데려오면 말이 많아져.”

서진우가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괜히 문제 만들 필요 없지.”

나는 둘을 번갈아 봤다.

“그럼 어떻게 합니까?”

정진동이 웃었다.

“하나 만들면 되지.”

“뭘요?”

“우리랑 상관없는 회사처럼 보이는 법인.”

서진우가 말을 이었다.

“고객 계약만 받는 영업 법인.”

“센터 운영은 사이언스켐이 하고.”

정진동이 책상을 두드렸다.

“깔끔하잖아.”

나는 그 말이 싫었다.

깔끔하다는 말은 늘 복잡한 걸 숨기고 있었다.

나는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 부탁 하나만 할게.”

“뭔데?”

“법인 하나 세워야 해.”

잠깐 침묵이 흘렀다.

형이 물었다.

“괜찮은 일이냐?”

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내가 필요해서 그래.”

형은 짧게 말했다.

“알았다.”

그렇게 레솔브가 만들어졌다.

간판도 없고 직원도 없었다.

종이 위에만 있는 회사였다.

막 설립된 법인이었고, 실적도 이력도 없었다.

나는 고객사를 다시 돌았다.

“센터 오픈 준비 중입니다.”

“운영은 제가 직접 챙기겠습니다.”

“문제없게 하겠습니다.”

고객사들은 바보가 아니었다.

레솔브가 막 만들어진 법인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한 담당자가 대놓고 물었다.

“은 부장님, 이 회사 방금 만든 회사 맞죠?”

나는 잠시 멈췄다가 말했다.

“계약 구조상 그렇게 진행하는 겁니다.”

그는 웃었다.

“솔직하시네요.”

다른 대표는 더 직접적이었다.

“회사 보고 하는 거 아닙니다.”

“은 부장님 보고 하는 겁니다.”

또 다른 담당자도 말했다.

“레솔브가 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대신 은 부장님은 아니까 진행하죠.”

나는 웃었다.

마음은 무거웠다.

그들은 회사를 믿은 게 아니었다.

나를 믿었다.

몇 군데 계약이 진행되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정진동이 낯선 남자를 데리고 들어왔다.

“은부장. 주원대 사장님이야. 오늘부터 영업 총괄.”

주원대는 사무실을 둘러보더니 내게 손을 내밀었다.

“잘 부탁합니다.”

나는 손을 잡았다.

차가운 손이었다.

첫날 오후, 그가 내 자리로 왔다.

“은부장, 고객 리스트 주세요.”

“어떤 리스트 말씀입니까?”

“전체요. 누가 어디까지 됐는지, 계약 상황도 전부.”

나는 그를 봤다.

“제가 관리하고 있습니다.”

그가 웃었다.

“이제 저한테 보고하셔야죠.”

싫었다.

하지만 보냈다.

회사 상사의 지시였고, 나는 이미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고객 정보도, 진행 상황도, 내가 만든 판도 전부 넘겼다.

그 무렵 센터는 거의 완공 단계였다.

랙이 들어왔고, 바닥 라인이 그어졌고, 외벽 간판도 달리고 있었다.

숫자로만 존재하던 사업이 형태를 갖춰가고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균열도 시작됐다.

며칠 뒤 서진우가 나를 따로 불렀다.

문을 닫자마자 말했다.

“정진동이 나보고 운송사업 넘기래.”

“무슨 말씀이십니까?”

“내가 따로 준비하던 거 있잖아. 자기한테 넘기라고.”

“왜요?”

서진우가 피식 웃었다.

“같이 사업하면서 동종업 하면 안 된다더라.”

“그건 J&S 시작 전부터 하시던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그는 담배를 만지작거렸다.

“이미 다 공유한 내용인데 이제 와서 저러는 거지.”

“뭐라고 하셨어요?”

“내가 투자하고 준비한 걸 어떻게 넘기냐고 했지.”

잠시 후, 낮게 말했다.

“그러니까 화내더라.”

“뭐라고요?”

“내가 지분 주고, 조카 취업시키고, 월급 주는데 뒤로 다른 사업 하냐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내가 보기엔 단순했다.

정진동에게 서진우는 필요할 때까지 필요한 사람이었다.

센터 부지 잡고, 공사 진행하고, 고객 데려오고.

센터가 완공되자 태도가 바뀌었다.

쓸 만큼 썼다는 얼굴이었다.

며칠 뒤 셋이 만났다고 했다.

정진동. 형수님. 서진우.

결론은 간단했다.

나와 조카를 내보내자는 것.

일요일 저녁이었다.

아이와 거실 바닥에서 블록을 맞추고 있었다.

전화가 울렸다.

서진우였다.

“은부장.”

“네.”

“내일 정진동이 너 해고 통보할 거다.”

나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마음 준비는 해.”

전화는 그렇게 끝났다.

아이가 블록을 들고 웃었다.

“아빠, 이것 봐.”

나는 웃는 척했다.

막아야 했다.

늦춰야 했다.

뭐라도 해야 했다.

그날 밤 육아휴직 신청서를 작성했다.

이름 칸에서 손이 멈췄다.

아이 이름을 적어야 했다.

이렇게까지 하는 나 자신이 너무 싫었다.

정진동에게 내 아이 이름이 적힌 서류를 내는 기분이 끔찍했다.

하지만 더 끔찍한 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거였다.

나는 고통스럽게 신청서를 메일로 보냈다.

다음 날 아침 문자가 왔다.

나는 사업하면서 직원 육아휴직은 받아본 적도 없다. 넌 해고다. 다음 달까지 월급은 나가겠다.

하지만 그달 월급도 온전히 받지 못했다.

그날 오후 고객사 미팅이 있었다.

취소할 수 있었다.

근데 갔다.

내가 약속한 계약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고객사 담당자가 계약서를 내밀었다.

“센터 주소 여기 맞죠?”

사이언스켐 센터 주소가 적혀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계약서 아래에는 두 이름이 있었다.

레솔브 대표. 형 이름.

그리고 정진동.

사인을 받고 곧장 센터로 갔다.

새 건물 냄새가 아직 남아 있었다.

나는 서진우 방 앞에 섰다.

노크를 했다.

“들어와.”

문을 열고 마지막 계약서를 내밀었다.

서진우가 말없이 받았다.

잠깐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울음이 터졌다.

“형… 저는 끝까지 했습니다.”

내가 그렇게 말했는지, 속으로만 했는지 모르겠다.

서진우는 한참 말이 없었다.

그러다 낮게 말했다.

“미안하다.”

그 말이 전부였다.

며칠 뒤 고객사에서 전화가 왔다.

“은 부장님, 주원대 사장님이 오셨습니다.”

나는 말없이 들었다.

“은 부장님 계약은 잘못된 계약이라고 하시던데요.”

“뭐가 잘못됐다고 합니까?”

“레솔브랑 계약한 건 정상적인 구조가 아니라고요. 다시 자기랑 계약하면 된다고 합니다.”

비슷한 전화가 두 군데 더 왔다.

나는 한동안 앉아 있었다.

내가 만든 계약이었다.

내 이름으로 쌓은 신뢰였다.

그게 이제 거짓이 되어 있었다.

레솔브를 정리해야 했다.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 별일 없지?”

형이 한동안 말이 없었다.

느낌이 이상했다.

“왜 그래?”

침묵 끝에 형이 말했다.

“나 암 이래.”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몇 달 전부터 몸이 안 좋다고 했었다.

나는 바쁘다는 이유로 깊이 듣지 않았다.

얼마 뒤 형이 입원한 병실로 정진동 전화가 왔다고 했다.

“우리 좀 만납시다. 계약을 돌려놔야 할 거 아니요.”

형은 짧게 말했다.

“만날 일 없을 겁니다.”

그리고 끊었다.

형이 병원에 있는 동안 나는 법무사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레솔브 청산 서류가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첫 줄에는 형 이름이 적혀 있었다.

법무사가 말했다.

“대표자 인감이 필요합니다.”

형은 수술 전에 인감을 내게 건넸다.

“알아서 처리해.”

그 말과 함께였다.

도장을 들었다.

문득 예전 전화가 떠올랐다.

“괜찮은 일이냐?”

형이 물었었다.

나는 그때 대답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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