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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경제학 — AURANIM Original Series
SERIES 01
낭만의 소멸 — 연애는 언제부터 거래가 되었나
연애, 낭만, 그리고 부동산 — 낭만은 어떻게 아파트 가격이 되었나
지역판 안내: 유튜브 「강도남」(강남사는도봉남자)에서는 이 가설을 강남·서초·송파와 노원·도봉·강북의 자료로 좁혀 검증한다. 사람의 우열이 아니라, 같은 서울에서 관계와 가족을 생활로 옮기는 비용이 어떻게 다른지를 비교한다.
연재를 시작하며
대한민국의 저출산을 설명하는 언어는 대부분 돈이다. 집값, 보육비, 사교육비. 나는 그 설명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순서가 궁금했다. 돈이 문제가 되기 전에, 먼저 사라진 것이 있지 않았나.
이 연재는 하나의 가설을 추적한다. 저출산은 어쩌면 낭만이 사라지면서 시작되었고, 그 소멸의 비용은 지금 아파트 가격표에 청구되고 있다는 가설. 네 편에 걸쳐 연애에서 출발해, 결혼과 출산을 지나, 부동산에 도착할 것이다.
미리 말해둘 것이 있다. 나는 낭만주의자가 아니다. 낭만이라는 말을 좋아하지도 않는다. 다만 그 세대는 그렇게 만났고, 지금 세대는 그렇게 만나지 못한다 — 이것은 향수가 아니라 관찰이다. 좋아하지도 않는 것이 사라졌는데 그 청구서가 모두에게 날아오고 있다면, 그것은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그래서 쓴다.
연재 안내 — 전 4화
① 낭만의 소멸 — 연애는 언제부터 거래가 되었나 (관계가 시작되기 전에 심사가 생긴 과정)
② 연애의 사다리 — 하는 사람만 하는 나라 (소득·고용·자산에 따른 연애와 혼인의 편중)
③ 아이들은 어디에 남았나 — 같은 출산율, 다른 감소 속도 (아이와 가족이 생활권에 남는 정도의 차이)
④ 낭만의 가격 — 사랑은 어떻게 아파트 가격이 되었나 (학군·주거 이동·자산 가격을 거쳐 고리가 닫히는 과정)
1990년대의 끝자락, 어느 남자 고등학교 음악실.
기악부 아이들이 악기를 닦고 있었다. 그날은 연습이 아니라 행사가 있는 날이었다. 대면식. 다른 여고 서클과 처음 만나는 자리였다.
지금 들으면 낯선 단어다. 대면식.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는 의식. 두 학교의 아이들은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이름과 학교와 악기. 아는 건 그게 전부였다. 그리고 그걸로 충분했다.
그 자리에서 연애가 시작되곤 했다. 편지가 오갔고, 삐삐 번호가 적힌 쪽지가 접혔고, 어떤 커플은 오래갔고, 대부분은 짧게 끝났다. 필요한 자본은 떡볶이값이었다. 필요한 서류는 없었다.
그 세대가 대학에 갔다. 미팅과 과팅이 있었다. 이성을 만나는 일은 계획이 아니라 문화였다.
그 시절의 서울 지도도 지금과는 달랐다. 1990년대 중반에도 대치동과 상계동의 아파트 가격은 같지 않았다. 다만 당시의 격차를 오늘과 비교하려면 단지와 평형, 거래 시점을 맞춰야 한다. 이 글은 검증되지 않은 배수를 먼저 말하지 않으려 한다.
분명한 것은 삼십 년 동안 두 지역의 주택 가격이 같은 속도로 움직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정확한 가격 차이는 ④화에서 동일 면적·동일 시점 자료로 다시 확인한다.
이 연재가 마지막에 도착할 질문이 여기에 있다. 낭만의 조건이 바뀐 삼십 년과, 강남과 강북의 주거 격차가 벌어진 삼십 년은 왜 같은 시간 위에 놓여 있는가.
차이는 있었다, 심사가 없었을 뿐
물론 그때도 잘사는 집 아이와 어려운 집 아이가 있었다. 차이는 언제나 있었다. 달랐던 건 하나다. 그 차이를 심사하는 절차가 없었다. 집안, 연봉, 키, 학벌 — 오늘의 프로필 항목들은 그때도 존재하는 정보였지만, 만남의 입장 조건으로 서면화되어 있지는 않았다. 차이는 만남 이후에 발견되는 것이었지, 만남 이전에 걸러지는 것이 아니었다.
오해를 막기 위해 다시 말한다. 나는 그 시절로 돌아가자는 쪽이 아니다. 그 시절이 더 좋았다고 말할 생각도 없다. 다만 그 세대는 그렇게 만났다. 검증 없이, 서류 없이, 떡볶이값으로. 그리고 지금은 그 방식이 작동하지 않는다. 무엇이 그 사이에 끼어들었는지 — 그것만이 이 글의 관심사다.
낭만의 경제학적 정의는 이렇다. 검증 없이 시작할 수 있는 관계. 상대에 대한 정보가 없어도 만남이 성립하던 시대의 제도들 — 대면식, 미팅, 캠퍼스. 낭만은 감정이 아니라 인프라였다.
신뢰의 재조정, 검증의 탄생
그 인프라가 어떻게 사라졌나. 한꺼번에 무너진 게 아니다. 신뢰가 재조정된 것이다. 지난 십 년, 만남의 안전에 대한 사회의 기준이 바뀌었다. 필요한 변화였다. 그러나 모든 변화에는 대가가 따르듯, 새 기준은 새 비용을 만들었다 — 모르는 사람과 만나는 일이 리스크로 분류되기 시작했다.
동시에 젊은 남성과 여성의 세계가 갈라졌다. 파이낸셜타임스는 2024년 분석에서 한국 2030 남녀의 이념 격차가 조사 대상국 가운데 가장 크다고 보도했다. 이 분석의 해석을 두고는 국내 연구자들 사이에 논쟁이 있다 — 격차의 크기는 측정 방식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나 방향에는 이견이 적다. 서로를 모르는 채 만나는 일이, 이전 세대보다 더 큰 오해의 리스크를 안게 되었다는 것.
리스크가 있는 곳에 검증이 생긴다. 경제의 철칙이다.
그래서 오늘의 만남은 검증을 통과해야 성립한다. 소개팅은 지인의 신원보증이다 — 보증인 네트워크가 없는 사람은 소개받지 못한다. 앱은 프로필 심사다 — 직장, 키, 학벌이 서류가 된다. 그리고 만남 자체에 가격표가 붙었다. 결혼정보회사 조사에서 미혼남녀가 답한 1회 데이트 비용은 10만 원 안팎이다. 2030 응답자 열 명 중 일곱이 데이트 비용을 부담이라고 답한 조사도 있다.
검증은 공짜가 아니다. 검증을 통과하는 것도, 검증을 수행하는 것도 돈이 든다.
숫자가 말하는 것
혼인은 1996년 43만 5천 건에서 2022년 19만 2천 건까지 줄었다(통계청 인구동향조사). 인구주택총조사 기준 20대는 열에 아홉 이상이 미혼이다. 미혼남녀의 절반 이상이 연애를 하지 않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평균 초혼 연령은 남자 33.9세, 여자 31.6세(국가데이터처, 2025년 혼인·이혼 통계) — 대면식 세대의 부모들이 아이 둘을 키우던 나이다.

부담을 느끼는 사람은 시장에서 나간다. 검증을 통과할 수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만난다. 끼리끼리는 취향이 아니라 비용 구조다.
여기서 이상한 숫자가 하나 나온다. 2025년, 혼인이 24만 건으로 전년보다 8.1% 늘었다(국가데이터처). 십 년 넘게 떨어지던 결혼이 반등한 것이다.
낭만이 돌아온 걸까.
아니면 — 검증을 통과할 수 있는 사람들이, 드디어 서로를 찾아낸 걸까.
그 답은 다음 화에서 숫자로 확인한다. 누가 결혼하고 있는지. 소득의 사다리와 연애의 사다리가 얼마나 정확하게 겹치는지.
지금은 하나만 기억하면 된다.
낭만은 무담보 신용대출이었다. 아무것도 없이 시작할 수 있는 관계. 우리는 사랑을 못 하게 된 게 아니다.
무담보로 시작할 수 없게 되었을 뿐이다.
다음 화 — 연애의 사다리: 하는 사람만 하는 나라
해석상의 주의: 관계 문화의 변화와 지역 주택 가격의 확대가 같은 시기에 나타났다는 사실만으로 둘의 인과관계를 확정할 수는 없다. 이 연재는 연애·혼인·출산·생활권 선택이 주거 수요로 이어질 수 있는 전달 경로를 단계별 자료로 검증한다.
Sources
국가데이터처(구 통계청), 「2025년 혼인·이혼 통계」 / 통계청 인구동향조사 혼인 건수 시계열 /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 연령별 미혼율 / Financial Times, “A new global gender divide is emerging” (2024) 및 국내 반론(정한울 여론연구, JTBC 팩트체크) / 헤럴드경제, 2030 데이트 비용 보도(2026) / 대학내일20대연구소, 「2030 연애 인식 및 행태 조사」 / 뉴시스, 미혼남녀 연애 실태 보도(2024). 본문 중 1990년대 강남·강북 아파트 가격 비교는 4화에서 KB 주택가격지수·한국건설산업연구원 자료로 상세 검증 예정.
